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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경당(Porziuncola) : 이태리 아씨시

by 이종한요한 posted Feb 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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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포르치운쿨라 경당(Porziuncola)
 

역사 : 포르치운쿨라 원고

장소 : 이태리 아씨시



2025년 교회의 오랜 전통인 성년을 마무리 하면서 교황님은 이 희년의 의미와 기쁨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성 프란치스코 귀천 800주년이 되는 올해를 또 희년의 연장으로 만들기 위해 교회 역사에서 포르치웅쿨라 전대사로 연장하여 교회안에 새로운 기쁨의 자리를 마련하신 것이다.



포르치운쿨라 라는 이름 자체가 “작은 몫”이라는 뜻이며, 그러기에 이 기도처는 20명의 사람이 들어가도 협소한 그런 초라한 공간이나 프란치스칸들은 이 좁은 공간을 보존하기 위해 큰 대성당을 건축해서 지금은 이 대성당 안에 있는 조그만 기도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자리는 프란치스칸 역사에서 대단한 상징성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수도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정착하셔서 자신이 생각하던 복음적 삶을 시작하신 자리이다. 가까운 곳에  리보토르토(Rivo Torto)라는 작은 개울이 있는데, 당시 근처에 살던 한센병 환자들이 여기에 와서 몸을 씻고 프란치스칸들의 사랑어린 치료의 도움을 받곤 했다.



당시 교회는 의료시설이 발달하지 않던 처지에 감염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피치 못할 조치라고도 이해할 수 있지만, 참 교회의 태도는 충격적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도 이어질 수 있는 교회의 한계점이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나환우들을 성당을 출입할 수 없다는 예식을 함으로서 나환자들에게 교회에 발부칠 데가 없는 한마디로 하느님도 이들을 버린 것같은 인상을 주는 일이 있었고 이때 이것은 무지한 신자들이 한 짓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권위가 이것을 선포했던 때였다.



그러나 교회가 나환자들을 교회로부터 내쫒았을 때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제자들과 함께 나환우들이 모이는 이 개울가로 가서 그들을 도운 후 저녁이면 오늘날 포르치운쿨라 기도처가 있는 곳으로 와서 기도하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새로 시작된 프란치스칸들을 보고 이미 기성 수도회였던 베네딕도 회원들이 자기들의 기도처로 사용하던 이 집을 프란치스칸에게 주면서 이 집은 프란치스코회 천 수도원 역할을 하게 되었다.



1216년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호노리오 3세께 그전 교회 역사에서 없었던 획기적인 요청을 했다. 이 기도처를 찾아 회개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대사의 은혜를  달라고 청하자, 성 프란치스코의 요청 안에 있는 시대에 걸맞는 복음적 열정을 이해한 교황님은 혼쾌히 허락하시고 이것이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된 전대사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전대사는 시대를 흐르면서 더 신자들의 현실에 맞는 시대 적응을 했고 또 무엇보다 이 전대사의 목표가 신자들에게 어떤 종교적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닌 자기를 정화함으로서 하느님과 더 가까운 삶을 살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중세기 교회는 원죄를 위시해서 인간들이 지은 죄를 너무 강조함으로서 신자들을 죄의 벌과 지옥의 공포에 시달리게 만든 것이었다. 교회의 가르침이 이렇게 된 것은 신자들에게 죄를 짖지 말라는 아버지다운 면모도 있었으나 뭐든 지나치면 부작용을 많이 내는 것처럼 교회의 이런 태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의미하고 잔인한 전쟁으로 평가되는 십자군 전쟁의 원인 제공을 하게 되었다. 과거엔 모슬램들이 “한손에 칼 다른 손에 코란”이라는 말로 모슬램 교리를 퍼트렸다는 주장을 하나 오늘 연구에 의하면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잔인함이 모슬램과 비길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교황이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면서  많은 모병꾼들을 동원해 강론을 했는데, 그중 교회 역사에서 12세기 교회에서 교황 이상의 권위를 지녔던 클레르보의 성 베드나르도 성인이 “가톨릭 신자가 십자군 전쟁에 나가 모슬램 군인 한명을 죽이면 직천당 한다”는 강론 내용은 참으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들의 머리를 휑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성인을 광인으로 만든 이유는 바로 교회에 대한 맹종의 태도와 교회가 신자 지도에 대한 방향성을 상실하고 너무 일방적인 처신의 했다는 것에서 찾는 처지에 성 프란치스코의 전대사 요청과 교황님의 허락은 교회가 “소잃고 라도 외양간을 고쳤다.”는 뜻에서나마 좋은 결론이 된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교회가 더 일찍 받아 들였다면 십자군 전쟁같은 수치는 교회가 면할 수 피할 수 있엇을 것이란 상상도 할 수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 말씀은 교황님께 전대사를 청했던 이유를 너무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저는 그대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그대의 종인 저를 사랑하는지, 그대가 이 사랑을 실천할지 이 점에서 알고 싶습니다. 곧,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대의 눈을 들여다보고 청할 때에 그대의 자비로운 용서를 얻지 못한 채 돌아가는 형제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잘 알려진 「어느 관구장에게 보낸 서간」(Epistola ad Quendam Ministrum)에 담긴 이 특별한 말씀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느 익명의 형제에게 위로와 조언을 건넬 뿐만 아니라, 그 무엇보다 용서와 대사의 개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된 자비의 근본 개념을 설명하고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씨시의 용서’ 또는 ‘포르치운쿨라의 대사(大赦)’로 불리는 용서이다.




이 전대사는 받고자 하는 신자들이 자신의 회심에 의해 은총 지위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은 이 전대사에 참여함으로서 정화를 통해 하느님과 더 가까운 처지의 인간으로 변모되는 것이 이 전대사의 목적이며 자신의 약함으로 지은 죄나 부족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하느님을 사랑과 자비가 지극하신 아버지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체험을 강조하게 해준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지만 인간적인 표현의 한계 때문에 아니면 죄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하느님을 불교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사천왕처럼 무서운 존재로 만나기 보다 피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종교로 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경건의 기본인양 이해하는 안타까운 수준이며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점점 더 피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 중 교회가 잘못 보이고 있는 하느님 상에 대한 실망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1216년 어느 날 이 작은 기도소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세상에서 불안과 고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주어야 겠다는 깊은 열정에  빠졌다.

이런 열정속에 빠져 있을 때 수많은 천사들의 옹위속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이 빛나는 광채속에서 발현하신 모습이 드러난 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 성인께서 전대사라는 제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도움을 성모자에게 청했고 이것이 교회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님의 인준을 받으면서 교회안에 신자들에게 영적인 힘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제도로서 정착되었다.



레오 교황님께서 이번 전대사를 반포하신 것은 성서에 나타나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현시대적 요청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내가 무었이던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었이던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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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내부 모습


이 기도처는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현재도 움브리아 지방의 시골에서 신자들이 농사 일을 하다가 길을 가다가도 잠시 들려 기도하던 그런 장소의 하나이기에 시각적 아름다움의 관점에선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또 5세기에 지어진 것이고 오랫 동안 버려졌던 것을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이 받은 것이라 일상 개념으로서의 예술 감각으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예술은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각 표현만이 아닌 진선미 전체를 표현하는것이라면  영적인 차원으로 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런 심원한 관점에서 보면 이 기도소는 교회안에 있는 어떤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 못지 않게  하느님의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석처럼 표현하고 있다.



지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보여야 할 아름다움의 구체적인 표현을 하면서, 세상이 강조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심원한 차원을 제시함으로서 성미술의 위상을 격상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름다움이 필요합니다. 미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속에 기쁨을 안겨주고, 시대를 초월하여 각 시대를 감탄속에 일치시키고 연결시키는 고귀한 열매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서한’ )



이 기도소안에는 빼곡하게 그림이 그려저 있으나 하도 장소가 협소하니 예수님과 성모님이 인류의 어려움을 받아 들이는 마음을 뽀르치운쿨라로 표현하신 것고,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예수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것을 알리는 성모영보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기도소는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복음의 핵심인 하느님의 사랑 표현이 이론으로서 아닌 자신의 허약하고 연약한 때문에 죄의 고통과 불안의 삶을 살기 쉬운 인간에 대한 해방과 위로의 행위로서의 은사를 베풀고 있다는 희망의 확약이라는 관점에서 참으로 대단한 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 아씨시라는 것으로 아씨시에 있는 성인과 관련된 여러 성지는 어디나 다른 대단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소는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너무도 생기있게 잘 표현한다는 관점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전체를 요약할 수 있는 모범 답안 수준의 보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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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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