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초를 이루는 세가지 확신에 대한 묵상 2
2. 나는 그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가난한 마음으로 누리는 축복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장 취약하고 관심에서 멀어진 믿음의 현장에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거나 아주 미약하거나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이 실재입니다. 믿음의 출발점이자 바닥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구체적 현실은 나의 실존입니다. 지금 내가 숨쉬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맛볼 수 있으며 향기를 맡고, 만질 수 있고 너와 피조물을 통하여 끊임없이 나에게 전달되는 사랑은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기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라 요구합니다.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성취했는지,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묻지만,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나는 그저 존재하기에 이미 충분한 사람입니다. 또한 얼마나 계명을 잘 지켰는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돈과 재능을 바쳤는지를 계산하느라 바쁩니다. 나는 완벽해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깨지고 부서진 틈이 많기에 그분의 위로가 오래 머무는 자리입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는 성프란치스코의 고백은 무언가를 더 가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미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감사였습니다. 그러니 일상의 관계에서 오해받고, 밀려나고, 무시당하고, 혼자 남겨진 듯 느껴질 때에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이미 우주의 창조주로부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연인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충동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시작해봅시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은 기분 좋은 위안이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들던 내면의 강박을 하나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아주 구체적인 자리에서 수련받게 됩니다. 관계 안에서 “내가 옳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인정받지 못했을 때 즉시 마음속 변명을 만들지 않고 그 허전함을 잠시 그대로 두는 것,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위로 대신 “그래도 나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더 깊은 고백으로 머무는 것, 가난한 마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깃든 상태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는 대신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라는 확신은 인정받고 이기려는 욕구에서 한 발 물러서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갈등의 많은 부분은 신앙의 차이보다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에서 시작됩니다. 내 헌신이 알아봐 주어지지 않았을 때, 내 의견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이 올라올 때, 이때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은 상대를 이겨도 되는 권리가 아니라, 이기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바닥이 됩니다. 실천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꼭 해야 할 말이 떠올라도 오늘은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 상대가 사과하지 않아도 내 존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 ‘이 관계가 깨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아래에 이미 하느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심을 기억하는 것,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주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자기 구원의 책임을 상대에게서 거두어 오는 행위입니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멈추지 않는 구체적 증거들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자주 사랑받고 있는지를 감정이나 상황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느껴질 때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이미 구조를 짜 두신 현실입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구체적인 진실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완전히 망가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끝내 버려지지 않고 다시 하루를 살아낼 힘이 남아 있다는 것,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즉시 같은 방식으로 되갚지 않게 붙들어 주는 어떤 보이지 않는 제동, 기도가 되지 않는 날에도 삶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남겨진 작은 일상의 리듬,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당신 안에서 일하고 계신 사랑의 흔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문제를 제거해 주는 방식보다, 문제 속에서도 당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방식으로 더 자주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랑받고 있다는 진실은 “나는 생각보다 더 오래 견디고 있고, 아직 관계 안에 남아 있다.” 그 자체가 사랑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