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마음에 성령의 불이 닿으면
이른 새벽, 아직 말이 깨어나기 전의 시간에
나는 노트북을 켜고 하루를 엽니다.
화면이 켜지는 동안 그 짧은 공백 속에서,
하느님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나에게 오십니다.
기도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아직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은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려는 이 미약한 의지임을,
그분은 이 조용한 순간마다 가르치십니다.
성령의 불을 청할 때
나는 더 이상 번쩍이는 체험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단숨에 바꾸어 놓는 극적인 변화보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말에 즉시 반박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
그 소소한 선택 안에서만 타오르는 불을 청합니다.
그 불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내 안의 조급함을 천천히 데우는
가난한 집의 아랫목 같은 불입니다.
형제의 말이 내 마음을 스칠 때 나는 아직도 쉽게 움츠러들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날 선 말로 나를 지키려 듭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령의 불은 나를 밀어붙이지 않고 조용히 묻습니다.
“지금 네가 지키려는 것은 진리냐, 자존심이냐.” 그 질문 앞에서
내가 움켜쥔 말들이 하나씩 풀어질 때,
내 안의 불은 더 밝아지는 대신 더 낮고 깊어집니다.
비움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작은 포기의 연속임을
나의 일상은 끈질기게 가르칩니다.
회의 자리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일,
공동체 안에서 알아주지 않음에 서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
상대의 부족함을 고쳐주고 싶은 충동 대신 함께 견디려는 선택.
이 모든 것이 나를 태우는 불이자 나를 남겨두는 재입니다.
정련된다는 것은 나의 열심이 순수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 없음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내가 없어도 일이 굴러가고,
내 말이 없어도 공동체가 살아 있고,
내 판단이 빠져도
하느님의 일은 조금도 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 깨달음 앞에서 내 안의 불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조용히 비워냅니다.
관계 안에서의 상처는 여전히 아프게 남아 있지만
성령의 불은 그것을 서둘러 지우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처 위에 머물며 독이 되지 않도록 천천히 말립니다.
날카로운 말은 재가 되고
억울함은 흙이 되어 다음 계절의 씨앗을 덮습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배워 나갑니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변해가는 견딤이라는 것을.
저녁이 되어 하루를 접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를 세지 않습니다.
대신 묻습니다.
오늘 나는 몇 번이나 나를 덜어냈는지,
몇 번이나 침묵이 말보다 사랑이었는지,
몇 번이나 네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내 마음을 개방할 용기를 냈는지.
그 질문들 속에서 성령의 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아주 작은 온기로 남아 내일의 관계를 준비합니다.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태워버린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상태임을.
정련된 온유란 상처받지 않는 단단함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시 사랑 쪽으로 기울 수 있는 부드러움임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타오르되 소모되지 않는 제단 앞에 섭니다.
말보다 태도로,
판단보다 동행으로,
높음보다 낮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바치기 위해.
이 작고 온유하고 가난한 불이
내 삶을 통과해
관계 안에 선이 흐르도록
나를 열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