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라든 인생길에 펼쳐진 인생길을 가려면 2
상처를 길의 안내자로 받아들이기
인생길이 곧게 펴진다는 것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펼쳐진 길로 가려면: 오그라들었던 흔적, 즉 인생의 옹이와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의 상처가 하느님 사랑의 흔적이었듯, 당신의 고단했던 세월도 하느님의 자비가 머물렀던 '사랑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상처를 긍정할 때 인생길은 비로소 구속 없는 평야가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활짝 펴진 손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손이 펴지는 모델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손을 오그려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손바닥을 완전히 드러내어 못 박히심으로써,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상태로 '완전한 내어줌'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의 오그라든 손이 펴진다는 것은, 단순히 근육이 이완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존재'로 변모되는 파스카적 신비를 의미합니다.
흉터 있는 손의 아름다움
손이 펴진다고 해서 고생의 흔적이나 옹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펴진 손에는 여전히 오그라들었던 시절의 흔적(흉터)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흉터는 이제 부끄러움이 아니라, 공감의 도구가 됩니다. "나도 당신처럼 시린 손을 가져보았기에 당신의 추위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건네주는 '귀한 존재'로서 진정한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오그라든 손은 죄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주소지입니다.“
결국 오그라든 손에 대한 깊은 통찰은 '수용으로 귀결됩니다. 내가 하느님의 무상한 밥상 위에 놓인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손의 긴장은 풀립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아도 하느님이 나를 살리신다는 신뢰가 손가락 마디마디에 스며들 때, 우리의 손은 비로소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랑의 도구'로 거듭납니다.
오그라든 손을 녹이는 작은 온기
움켜쥔 손은 사실 '아픈 손'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칸의 눈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추워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손이 시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게 됩니다. 마음이 얼어붙은 이들이 나밖에 모르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움켜쥐지 않으면 내 존재가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의 닫힌 손을 비난하기보다, "얼마나 추우면 저토록 꽉 쥐고 있을까" 하는 가련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온기의 시작입니다.
내 생존 위에 차려진 '타자의 밥상'
'나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으로 내 생존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마신 물 한 잔, 내가 입은 옷 한 벌은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노동과 피조물의 내어줌으로 차려진 밥상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의 손을 잡았을 때, 그는 자신의 우월함을 준 것이 아니라 그 환자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오늘 얼마나 많은 피조물이 제 몸을 펴서 밥상이 되어주었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는 타자의 자비 없이는 단 하루도 실존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은 망치로 친다고 깨지지 않습니다. 그저 따뜻한 곁에 두면 스스로 녹아 물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그러합니다. 우리에게 "당장 손을 펴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그저 그 시린 손을 당신의 품에 가만히 넣고 기다려주실 뿐입니다. 오늘 나밖에 모르는 마음이 올라온다면,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그저 하느님의 따스한 밥상 앞에 앉아 하느님의 자비라는 온기를 충분히 쬐다 보면, 오그라든 손가락은 어느새 힘을 빼고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켤 것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묻지 않는 '비움'의 사랑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겸비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 혹은 오그라든 손을 스스로 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가난함과 허물을 보시고 오히려 그곳에 당신의 온 존재를 쏟아부으십니다. "무상"이란, 우리가 갚을 길이 없음을 하느님이 이미 알고 계신다는 뜻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우리 손에 쥐여주시는 파격적인 투신입니다.
만물 안에서 일렁이는 '보편적 형제애'
프란치스칸 강성의 핵심은 사랑의 범위에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당의 제대 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풀꽃, 구걸하는 나병 환자의 일그러진 손, 사나운 늑대와 차가운 바람 이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오그라든 손' 역시 하느님께는 흉측한 상처가 아니라, 그분이 머물고 싶어 하시는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입니다. 만물을 '형제와 자매'라 부를 수 있는 힘은,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차별 없이 품고 계신다는 그 압도적인 보편성에서 나옵니다.
'완전한 기쁨'으로 승화되는 고통
프란치스코는 고통과 모욕 속에서도 '완전한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온실 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도 춤추게 하는 강인함입니다. 오그라든 손이 펴지는 과정은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조차 하느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거룩한 변모의 과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