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합니다.
물론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도 그 집 안에 있는 것 같은데
복음은 그들이 예수님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반대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이들은 의사에게 오지 않지만
병든 이들은 의사에게 다가갑니다.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필요하지 않으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용서해 주실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죄를 지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칭찬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통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곁에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생각해 봅니다.
정의가 이루어져서 행복한 나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 계신 곳을 하느님 나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정의가 초점이라면 죄인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초점이라면
하느님을 원하는 누구나 그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할수록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죄 중에 하느님을 찾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과연 이러한 것도 용서해 주실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나의 잘못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오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아시기에
그 고통에 함께하시기 위해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우리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곳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