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
부르심은 언제나 이름으로 오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천둥처럼 모든 이를 한꺼번에 흔들지 않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불린 순간, 그의 세계는 조용히 방향을 바꿉니다.
구약에서는 먼저, 아브라함에게, 그 부르심은 지도를 주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네가 살던 땅을 떠나라.” 하느님은 목적지를 설명하지 않으셨고 안전장치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약속 하나,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부르심은 무언가를 더 갖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붙들고 있던 확실함을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초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알지 못한 채 떠났고 그 떠남 자체가 이미 믿음이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부르심은 타오르되 사라지지 않는 가시덤불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그는 말이 느렸고 과거는 무거웠으며 자신을 부르실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유능함이 아니라 고통을 알아보는 마음을 보셨습니다. “내 백성의 신음소리를 내가 들었다.” 부르심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으로 그를 끌어당기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모세는 더 이상 자기 인생만 사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들에게 부르심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의 무게로 왔습니다. 그들은 보고도 침묵할 수 없었고 알고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심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에 사로잡히는 길이었습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견디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에서 부르심은 갈릴래아의 일상 한가운데서 걸려 넘어지듯 시작됩니다. 그물 손질하던 손을 그대로 둔 채, 세리의 계산대 앞에서, 평범한 길 위에서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제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그 음성 앞에서만큼은 자기 삶이 작아 보였기 때문에 일어섰습니다. 부르심은 완성된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함께 빚어 갈 사람을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도 부르심은 계속됩니다. 성직자에게 그 부르심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말씀과 성사의 통로가 되라는 요청입니다. 그는 중심에 서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수도자에게 부르심은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소유, 경쟁, 포장, 자랑, 비교, 자기 증명의 언어 그 바깥으로 걸어 나오라는 초대입니다. 그들의 삶은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침묵의 증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은 성직자와 수도자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평신도에게 부르심은 도망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관계의 피로 한가운데서 복음을 살아내라는 부르심이며 그 부르심은 무대 위가 아니라 부엌과 회의실, 병실과 골목길에서 가장 진실해집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역할을 나누기 위한 구분이 아니라 사랑을 퍼뜨리기 위한 다양한 길입니다. 누구도 대신 응답해 줄 수 없고 아무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르심은 언제나 단수이며, 관계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들려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부른다.” 그 음성에 완벽한 준비로 응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응답한 사람은 모두 자기 삶이 하느님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부르심은 특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하느님과 함께 살게 하는 은총이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은 사람을 개별적으로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이미 당신의 이름을 알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