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는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모님(테오토코스)을 모시고 인간 영혼과 자연의 회복, 그리고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향합니다.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를 덜어내어,
가난한 이웃과 지구를 위한 사랑의 공간을 만드는 한 주입니다.
성체는 “멀리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 머무르시는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체 앞에서 감사와 봉헌, 그리고 아낌의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들숨: 예수 / 날숨: 마리아 (3~5회)
구약: 창세 41–44장
신약: 마태오 8,23–34
마태오 3,13–17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시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초대교부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이 신비를 이렇게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물에 들어가심은, 우리를 씻기시려는 사랑의 낮아지심이다.”
오늘 성체 앞에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높아지기 위해가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무르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아낌 주간의 첫날, 저도 “덜어냄”으로 주님이 머무를 자리를 제 안에 만들게 하소서.
일요일: 영화
〈데칼로그 1〉 (Dekalog I, 1989)
— 계명과 자유, 책임의 경계에 선 인간
〈데칼로그 1〉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는
첫 번째 계명을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삶의 질문으로 우리 앞에 놓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이성을 신뢰하는 아버지와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과학과 계산, 확률을 신처럼 신뢰하며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가?”
키에슬로프스키에게 계명은
자유를 억압하는 규칙이 아니라,
자유가 무너질 수 있는 한계를
사랑으로 가리켜 주는 표지판입니다.
영화 속 침묵과 겨울의 얼음은
차갑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오만과 연약함이
정직하게 드러납니다.
계명을 어겼기 때문에 벌을 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을 잊을 때 인간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니마또레 영성에서 자유란
마음대로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방향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데칼로그 1〉은
자유가 하느님 없이도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자유가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네가 믿는 것은 정말 하느님인가,
아니면 네가 만든 확신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