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나환자는 이렇게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내가 고쳐주마!”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나환자의 청을 굽어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서간의 말씀 곧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나환자의 청은 주님 뜻에 따라 청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 청원 기도에서 보면
나환자의 청은 주님 뜻에 맞기 때문인지 들어 주신 데 비해
나의 청은 안 들어주시는 것 같아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내가 청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
들어주시지 않는 것을 보면 내 청이 하느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나의 청과 나환자의 청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기에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인지.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요 몇 년 한 젊은 가장을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느님께서 고쳐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치성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인가? 하고도 생각하고,
겸손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도 생각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매우 한국적인 생각이고
인간적인 생각 곧 비신앙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게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생각이 있지요.
지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청을 들어주신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늘을 움직인다는 생각이 아닙니까?
인간의 정성이 냉혹한 하느님도 마음을 바꾼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의 정성보다 작다는 말이고,
인간의 공로에 따라 자비를 베푸신다는 말이 되니
이는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 교리에 위배 됩니다.
결국 겸손한 믿음이 제게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우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겸손함이 제게 필요하고,
내가 모르는 더 좋은 하느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제게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그가 당장 치유되기를 바라지만 하느님의 뜻은
인내의 시간을 더 가지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육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심이 영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몇십 년 신앙생활을 했어도 아직도 하느님의 뜻을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만 더 좋은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바라고 청하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하고 겟세마니의 주님처럼 기도할 뿐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