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삶의 방향을 다시 하느님께 돌리며
영혼의 중심을 회복하는 달입니다.
자신·이웃·동식물·자연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회복하는 한 주입니다.
오늘은 상처 입은 이들을 향해 먼저 손 내미는 돌봄을 배우는 날입니다.
성 이냐시오 안티오키아
(St. Ignatius of Antioch, † c.110)
— 사도적 교부, 순교자, 교회의 일치를 노래한 증인
성 이냐시오 안티오키아는
사도들의 직계 제자로서
교회가 아직 작고 연약하던 시기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일치와 사랑을 증언한 성인입니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다.”
이 말은 신학적 선언이기 전에
삶 전체를 내어준 신뢰의 고백이었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자신을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길이었습니다.
돌봄 주간의 금요일,
성 이냐시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누구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주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모시고,
이웃과 공동체를 살리는
아니마또레의 돌봄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초대받습니다.
들숨: 예수
날숨: 마리아
(3~5회,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으며)
구약: 창세 33–36장
신약: 마태오 7장
(통독표 기준)
루카 5,12–16 — 성 아우구스티노
나병환자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피하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만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한다. 깨끗하게 되어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묵상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병보다 먼저
사람을 만지셨다.”
예수님의 손길은
치유 이전에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분은 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고립과 낙인 속에 있던 이를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십니다.
돌봄은
안전한 거리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돌봄은
두려움을 넘어
상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피하고 싶었던 상처 앞에서도
당신의 손길을 신뢰하게 하소서.”
금요일: 건축·조각 —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 1852–1926)
가우디는
자연의 곡선을 본받아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품어 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건축은
지배가 아니라
돌봄이었고,
완성보다 과정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성인은
삶의 공간을
이웃이 머물 수 있는 자리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금요일: 인지심리학 & 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