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혁명적 사건
요한 1서 4:11-18 묵상
본문 요약 및 구조
11-12절: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13-16절: 사랑의 확신과 신앙 고백 성령의 선물과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고백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대선언이 등장합니다.
17-18절: 사랑과 두려움의 관계 완전한 사랑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하느님을 닮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확신과 평화를 줍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처 (묵상)
태초에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우리가 어둠의 장막 아래 숨어 있을 때에도 먼저 우리를 굽어살피신 그 지극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 삶의 유일한 응답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마땅한 흐름이며, 그분께 받은 빛을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이 사랑의 길은 먼저 말씀 앞에 나의 완고함을 굴복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의지가 꺾이고 그분의 진리가 내 삶의 주인이 될 때, 사랑은 비로소 내면의 추상적인 관념을 벗어나 살아있는 실재가 됩니다. 그분 안에 머무는 신비로운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이는 그 풍요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흘려보내게 마련입니다. 나를 채운 하느님의 숨결이 타인을 향한 따스한 배려로 나누어질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우리 사이의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비로소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참된 사랑은 위로 오르는 욕망이 아니라 아래로 흐르는 겸손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며, 움켜쥐었던 집착의 손길을 놓아줍니다. 상대의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기 위해 내 권리를 내려놓고, 그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며, 내 기준에 맞추려 했던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놓아주는 것—그 비워진 자리마다 하느님의 영이 깃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계는 얕은 호감을 넘어, 서로의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깊이 맞닿는 성소가 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숨결, 즉 성령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거룩한 영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압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숨 쉬고 있으며, 그분 또한 우리라는 작은 우주 안에 머물고 계신다는 신비로운 일치를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셨음을 우리가 보고 믿었기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는 입술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따라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손길마다 하느님의 현존이 깃듭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문장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바닥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이라는 바다에 몸을 담근 사람이며, 하느님 또한 그 사람의 삶이라는 잔에 당신의 전부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분이 사셨던 모습 그대로, 낮은 곳에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랑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완성의 문턱을 넘게 됩니다.
그 완성된 사랑 앞에는 심판의 날조차 두려움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합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을 용납한 이에게는 잃을 것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영혼의 모든 구석을 비추어 벌에 대한 공포와 죄책의 사슬을 끊어내고 두려움을 밖으로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아직 나를 지키려는 미완의 마음에 머물러 있지만,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내어주고 놓아주는 사랑에 투신한 이는 이미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스스로를 낮추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은 이미 하느님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깊은 거처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확신으로, 자아의 감옥에서 관계의 축제로 인도하는 영원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