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는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모님(테오토코스)을 모시고
그리고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향합니다.
분주함을 멈추고
하느님의 숨결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달입니다.
자신·이웃·동식물·자연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회복하는 한 주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자비가 돌봄으로 번져 가는 날입니다.
성령은
멀리 계신 힘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한가운데에서
자비로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들숨: 예수
날숨: 마리아
(3~5회, 성령의 숨결을 의식하며)
구약: 창세 21–24장
신약: 마태오 5,21–48
마르 6,34–44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보신 것은
군중의 배고픔이 아니라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 주기 전에
먼저 머무르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돌봄은
능력이 충분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 마음이 움직였을 때 시작됩니다.
성령의 날인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자비 안에서
이미 시작하고 있는가?”
화요일: 음악(성음악)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는
단순한 음 하나하나를
기도처럼 배치하는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은
소리를 채우기보다
침묵을 존중하는 음악입니다.
패르트는 말했습니다.
“한 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
그의 음악은
아니마또레 영성처럼
크게 외치지 않고,
상처 입은 마음 곁에 조용히 머무는 음악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자비가
이처럼 조용히 흘러간다는 것을 배웁니다.
화요일: 물리학 & 고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