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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나라와 영원한 생명 그리고 구원에 대한 이해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an 0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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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 안에서 흐르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멈추지 않는 시간의 강물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그 사랑의 숨결 속에 내 영혼이 깊이 잠기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흔히 끝없는 내일을 꿈꾸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영생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의 눈동자 속에 머무는 친교의 시간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성부 하느님, 당신은 무()의 심연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당신의 모상을 새기셨고, 우리가 죄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자비의 등불을 끄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만드신 손길이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심을,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조각이 당신의 섭리라는 거대한 그물망 안에서 보살펴지고 있음을 온전히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 아득한 사랑의 높이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하고도 견고한 다리이십니다. 육화의 신비로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나누셨고, 파스카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 안의 죽음을 사멸시키셨습니다. 당신을 '안다'는 것은 책 속의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걸으신 비움과 낮춤의 길을 내 발걸음으로 따라가는 일이며, 성체성사의 신비 안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 생명으로 받아 모시는 뜨거운 일치입니다. 아드님을 믿는 믿음은 곧 우리를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를 걷어내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을 되찾았음을 선포하는 부활의 노래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영생은 죽음 너머의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리는 은총의 단비가 됩니다. 세례의 물로 우리 안에 심어진 영생의 씨앗은, 매일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납니다.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을 품는 것, 미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용서의 손길을 내미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을 형제들의 얼굴 속에서 발견하는 것, 이 모든 순간이 바로 우리 안에 흐르는 영원한 생명의 맥박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상의 보석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가 매일 조금씩 하느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림자 속을 걷지 않습니다.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총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에, 우리의 지상 여정은 허무로 끝나는 방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을 향한 복된 순례가 됩니다. 언젠가 이 세상의 가림막이 걷히고 우리가 하느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뵙게 될 그날,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졌던 그 작고 가난한 믿음이, 실은 우리를 영원한 기쁨의 바다로 인도하던 생명의 닻이었음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 안에서, 우리는 이제 영원히 마르지 않는 그 생명의 샘물을 마시며 끝없는 평화 속에 머물 것입니다.

 

영원은 지금 여기에서 숨쉽니다. 우리는 종종 영원한 생명을 죽음 너머에 놓아 둡니다. 마치 긴 여행 끝에 도착하는 어떤 다른 세계처럼, 지금의 삶과는 단절된 보상의 장소처럼 상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원을 먼 미래로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시간을 뚫고 오늘의 심장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끝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연결된 삶의 결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숨결, 두려움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자유, 자기 자신을 지키느라 타인을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평화. 그래서 영원은 시계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용서가 일어나는 순간, 가난한 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그때, 자기중심의 껍질이 벗겨지고 타인의 고통이 내 삶의 문제로 들어오는 그 자리가 이미 영원의 문턱입니다. 구원은 영혼을 포장하여 저 세상으로 운반하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은 지금까지 나를 가두고 있던 모든 거짓된 중심에서 풀려나는 일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지켜야 할 존재로 착각하며 살아왔고, 비교와 성취와 인정 속에서 내 가치를 증명하려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긴장은 나를 살리기보다 조금씩 굳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구원은 번개처럼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다가와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느슨하게 풀어 주었습니다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사랑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강박에서혼자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독한 오해에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구원이란 하느님께서 나를 다시 관계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입니다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는 사건내 삶이 이미 누군가의 선물 위에 놓여 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안에서 구체화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 위에만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으로 드러난 말씀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그분의 방식은 강한 자가 이기는 질서가 아니고, 많이 가진 자가 안전한 체계도 아니며, 자기중심이 합리화되는 구조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작은 이가 중심에 서고, 말하지 못한 고통이 가장 먼저 들려지며, 자격 없는 이가 가장 따뜻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 나라는 크게 외쳐서 오지 않고, 눈부신 기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한 조각의 빵을 나누는 손길, 무너진 관계를 다시 건너가려는 용기, 복수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마음 안에서 조용히 자라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순례자로 살아갑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 나라 안에서 숨 쉬는 삶이고, 구원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해방이며, 하느님 나라는 그 해방이 일상의 관계 속에서 형태를 얻는 자리입니다. 이 셋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오늘 내가 누구의 편에 서는가, 오늘 내가 무엇을 내려놓는가 속에서 이미 하나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사람은 지금을 가볍게 살 수 없습니다. 구원을 믿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고,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의 삶을 하느님의 방식으로 다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로 도망치기 위해 땅을 사는 것이 아니라땅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배우기 위해 하늘을 믿습니다영원은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이며구원은 판결이 아니라 변화이고하느님 나라는 나중에 주어질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서서히 자라나는 삶의 형식입니다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조용히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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