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 마리아 자매님을 떠나보내며
(장례식장에서 고별 시)
주님,
오늘 우리는 한 영혼이 지나간 자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등잔불처럼
가만히 마음을 낮추어 기도합니다.
마리아 자매님!
자매님은 오랜 세월
부서진 마음을 품은 어머니의 등불로 살아오셨습니다.
하늘이 먼저 데려가신
작은형제회의 사제 아들을 가슴에 묻고
그 깊어진 상처를
어두운 우물처럼 침묵 속에 간직하며,
견뎌오셨습니다.
자매님은 그 우물 아래에서조차
다른 이를 위한 물을 길어 올리셨습니다.
주님,
그 상처는
자매님의 영혼을 더 깊고 단단하게 했습니다.
눈물로 빛나는 그 숨결을 따라
당신의 자비가 스며들었고
자매님은 그 자비를
우리에게 흘려보내는 작은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합니다.
자매님이 얼마나 자신을 약하다고 여기셨는지,
얼마나 조용히 뒤에서 흔들리며
형제회 봉사자의 자리를 지켰는지를.
그러나 주님,
당신은 나약한 갈대마저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시듯
그분의 부족함 속에 숨겨진 선함을
도구 삼아 주변을 밝혀주었습니다.
주님,
이제 자매님은
눈물의 골짜기를 건너
당신의 빛이 흘러넘치는 새벽의 언덕에 서 있습니다.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먼저 부르신 아들과
당신 안에서 다시 만나는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님,
이성자 마리아 자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그분이 지닌 아픔의 잔을
영원한 기쁨으로 채워 주소서.
그리고 남겨진 우리에게는
그분이 지나간 길 위에 남긴
작은 깃털 같은 평화,
바람결에 흩날리는 자비의 꽃씨가 되게 하소서
아멘.
눈 내리는 날
(장례식 다음 날 새벽)
하늘이 내게로 왔다.
소복을 하고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사뿐사뿐 가냘픈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더니
아들 찾아 떠나셨나!
세상이 잠든 새벽
흰 눈 되어 오시는구나!
부끄러운 과거를 덮고
용서와 화해의 속살로
희망을 노래하는구나!
오소서 성령님!
눈과 함께 오소서
지치고 시린 손을 내미는 이들 위에
위로의 눈을 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