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대림절 독서와 복음은 오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계속 얘기하는데
오늘은 주님께서는 안식을 주러 오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안식을 주러 오시는데 나는 그분께 가서 안식을 얻는가?’
우리는 당연히 이런 질문과 성찰을 오늘 하게 되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라고 하시는 주님께 가서 안식을 얻는가?
아니면 다른 데서 안식을 얻는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친구나 부모 또는 애인에게서 안식을 찾고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점쟁이나 무당에게서 안식을 찾곤 하지요.
어제는 음악 방송을 들으면서 어딜 갔는데
듣고 싶은 음악을 청하면서 자기 사연도 전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요즘 한창 유행인 독감을 앓는 분들이
밤새 끙끙 앓은 고통을 방송에 호소하면서 음악의 위로인지
아나운서의 위로인지 그런 것에서 위로받으려는 거였습니다.
이런 고통은 이렇게 위로받으며 안식을 얻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위로는 이런 정도로도 충분하겠습니까?
주님의 위로를 아니 받고도 안식을 얻을 수 있겠으며
이러한 위로와 안식에 안주해도 되겠습니까?
왜 이런 얘기하는지 여러분도 즉시 감이 올 것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제게 즉시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대리만족’이나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말들이 그것이고,
어쨌거나 참 안식이 아닌 것들로 대리 안식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리만족이 나쁘다고 하는 이유는 그 만족이 나쁜 것이기에 나쁜 것도 있지만
그 만족은 나쁘지 않지만 참 만족을 찾지 않게 하기에 나쁜 것이 더 큰 이유지요.
그러니까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 만족은 자체로 나쁜 것이지만
사랑의 만족 대신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어도
사랑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게 하기에 나쁜 것입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
곧 대리 위로와 대리 안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나쁘지 않고 필요하겠습니다.
곧 인간의 위로를 통해서 하느님의 위로를 느끼게 되는 위로,
그의 인도로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서 안식을 누리는 안식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안식이 오늘 주님께서 주시겠다는 안식이며
겸손과 온유라는 멍에로 짐을 지라는 오늘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를 때
주시겠다는 안식인데 주님의 이 안식 초대에 우리가 응할 것인지,
다른 안식으로 대리만족할 것인지 도전받는 오늘 우리입니다만,
우리는 당연히 대리만족과 대리 안식을 깨어 경계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