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림 제2주일 가르침을 요약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가 오시길 기다리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시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에 가져오는 분이시다.
그분과 함께 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것은 오늘 첫째 독서가 얘기하는 그런 나라이다.
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이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대림절에 오시길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가져오는 분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하느님 나라는 정말로 Fantastic/환상적이고,
이 하느님 나라의 평화는 완벽한 평화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완벽한 평화는 완벽한 정의에 바탕을 둡니다.
이 세상의 정의와는 천지 차이 곧 하늘과 땅 사이만큼 차이 납니다.
이 땅의 정의, 이 세상의 정의는 타락했습니다.
저마다 정의를 외치는데 그것이 다 자기식의 정의입니다.
자기가 정의롭다고 하고 자기 기준이랄까 자기중심의 정의입니다.
그래서 정의는 좋은 것이지만, 타락했다고 하는 것인데
모든 권력자가 다 정의를 얘기했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정의이고 그래서 힘없는 사람들은 법의 이름으로
억압받고, 고통받고, 희생당하였지요.
제 식구 감싸기가 전 정권에 이어 지금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그래서 정의는 이 땅에서 계속 타락하는데 그것은
사랑이 없으면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죽이고 남을 이기려는 세력들에게 정의는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힘이 있으면 정의이고, 힘이 없으면 불의가 되고 말며,
법도 힘이 있는 사람들 편이지 없는 사람들 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늘의 정의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의 정의에 입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고”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치십니다.”
그 결과는 완전한 평화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쪽으로 기울어짐이 없고,
그래서 경쟁도 싸움도 없고 사랑과 상생과 평화만 있습니다.
인간끼리만 평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도 상생과 평화가 있고, 짐승 사이에도 약육강식이 없습니다.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이런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우리 모두 바라고 모든 이가 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 생각에 호전주의자와 평화주의자 사이에 누가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평화주의자들이 더 많을 것 같지만, 지금 평화가 없는 것을 보면
전쟁광은 아니더라도 호전주의자들이 더 많기에 평화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 싸움은 힘 있는 사람들이 일으키고 이익을 보는 사람이 일으킵니다.
싸워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보시고, 중국과 대만을 보십시오.
누가 전쟁을 일으켰고, 누가 전쟁을 일으킬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진정 평화주의자이고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까?
세례자 요한은 오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아주 심한 욕을 하는데 우린 독사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음수성유(牛飮水成乳) 사음수성독(蛇飮水成毒),
소도 물을 먹고 뱀도 같은 물을 먹지만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지요.
뱀에게는 남을 살리는 우유를 줘도 남을 해치는 독으로 만들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웃을 살리는 사람입니까? 죽어가게 하는 사람입니까?
내 입에서 사랑의 말이 나갑니까? 독설(毒舌)이 나갑니까?
뱀과 같은 나라면 소와 같은 나로 존재적 회개를 회야 할 시점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