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아래 남은 우리의 사랑 – 묵상시
첫눈이 내리는 아침,
세상은 잠시
하느님의 숨결 아래 눕는다.
들판은 소박한 제단이 되고,
나무들은 맨몸으로 서서
하늘의 선물을 그대로 받아낸다.
그 위에 우리의 사랑도 함께 내려앉는다.
가난하고, 작고, 숨죽이며 기다리던 사랑.
눈송이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손길처럼 떨어져
우리의 틈새를 덮어주고,
상처 난 자리 위에도
하얀 평화를 조용히 놓아준다.
프란치스코가
돌바닥 위에서 들었던
그 단순한 기쁨처럼,
우리의 사랑도
소유가 아니고
주장이 아니라
그저 내어놓음에서 시작되었다.
첫눈 아래의 평화는
요란하지 않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관계를 밝히는
작은 빛 하나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비출 뿐이다.
우리는 종종
큰 길을 찾다가 지치지만,
사랑은 언제나
작은 길에서 피어난다.
발자국 하나 겨우 남길
그 좁은 길에서
하느님은 가장 선명하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신다.
첫눈 아래 남은 우리의 사랑은
그 작은 길을 잊지 않게 한다.
기억 속에 묻어둔 고요한 감사,
기도처럼 속삭이던 서로의 이름,
말보다 깊었던 침묵…
그 모든 것이 눈처럼 내려와
우리 안에 평화를 심는다.
세상은 여전히 차고 거칠지만
하느님께서는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피워내신다.
그러므로 첫눈 아래 남은 우리의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더 깊어지고,
더 순해지고,
더 투명해진다.
오늘도 나는
그 하얀 속살의 평화 위에
가만히 서서
감사와 침묵의 숨을 내쉰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프란치스코의 작은 길은
언제나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