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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Dec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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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2월 6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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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헐뜯는 자들의 무딘 마음을 벌주기를 삼가셨을 뿐 아니라,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온유함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증거이며. 그들의 악의적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이루어질 표징들과 더욱 명확하게 전개될 논박으로 당신의 영광에 관한 더 많은 증거될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 고을과 마을과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당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똑같은 욕설로 대하지 말고 더 자비롭게 대하라고 모든 이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동료들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도 그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그들이 어떤 짓을 하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를플 그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더욱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욕을 먹고 선을 행하기를 그만 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바랐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은 오직 선올 행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두루 다니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들이 당신께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에 관한 복음과 그들의 병 치유라는 두 가지축복을 가지고 몸소 서둘러 그들에게 가셨습니다. 그것을 주시기 위해, 아무리 작은 마을도 지나치지 않고 온갖 곳을두루 다니셨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5 우리의 신성
이것을 위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고 하셨다(사도 1,4).
영혼 안에 피조물들의 차이가 있는 한, 영혼에게는 근심이 될 것입니다. 자주 말씀드렸듯이, 영혼이 자신의 존재, 곧 자연 그대로 지어진 존재만을 가진 곳에서는 어떠한 진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영혼의 지어진 본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많은 성직자들은 하느넘과 관련된 아무개, 곧 하느넘과 하나인 아무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과는 공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어진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과 지어진 만물은 그 아무개와는 거리가 멀고 낯설 따르입니다. 그것은 자기 바깥에서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는 하나 그 자체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빛보다 높은 하늘, 모든 이해와 모든 파악을 넘어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빛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일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불사불멸하시고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도다”(1티모 6,16). 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이 빛은 순수한 일치 그 자체 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죽어야 하고, 철저히 죽어야 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비슷한 것일랑 모두 여의고, 그 누구와도 비슷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할 때만 우리는 실로 하느님처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고,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게 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도 하느님 자신인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아멘.(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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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 토요일 이웃 종교의 날✝️
6. 교황 프란치스코의 찬미받으소서 220-221항
220. 이러한 회개에는 여러 가지 태도가 필요한데, 이러한 태도들이 서로 어우러져 관대하고 부드러움이 넘치는 환경 보호의 정신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먼저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가 있습니다. 다시 말
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올 사랑으로 선물하셨기에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누가 보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관대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게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또한 이러한 회개는 우리가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세상의 다른 존재를과 더불어 커다란 보편적 친교
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인식을 포합합니다. 신자들은 세상을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바라보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와 결합시켜 주신 유대를 깨닫습니다.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
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주어, 창의력을 전개하고 열정을 북돋우게 하며,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221. 이 회칙의 서두에서 제시한 우리 신앙에 대한 여러 확신들이 그러한 회개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모습을 어느 모로 반영하며 우리를 가르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께서 이 물질세계에 몸소 오시고 이제 부활하시어 모든 존재의 내면에 현존하시며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당신 빛으로 밝혀 주신다는 확신이 포함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그 안에 인간이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질서와 역통성을 새겨 주셨다는 인식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참새들에 대하여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루카 12.6)라고 하신 말씀을 읽고서도, 새들을 소훌히 대하거나 해칠 수 있습니까?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의 이 차원을 분명히 드러내어, 우리가 받은 은총의 힘과 빛이 다른 피조물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도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그토록 훌륭하게 실천하신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숭고한 형제애의 증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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