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오실 주님께서 보지 못하던 이들을 보게 하시리라고 예언하고,
복음은 오신 주님께서는 이사야서의 예언대로 보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날에는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그런데 우리의 전례가 이 말씀을 들려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도 눈이 멀어서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이제는 봐야 하고 주님 덕분에 보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볼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볼 것 못 볼 것 다 봤는데 뭘 더 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비록 눈이 침침해도 보고 싶은 것 다 봤는데 뭘 더 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다 봤다고 생각하고 봐야 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오늘 복음의 눈먼 이들처럼 보지 못하는 나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뭘 보지 못하는지 성찰해보니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죄만 보는 죄책감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만 보는 어두움 때문에 하느님의 선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지은 나에 대한 미움과 분노 때문에
하느님 자비가 있을 자리가 없는 나를,
그래서 무자비한 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 자비가 없기에
악한 세상에 대한 연민도 없고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란 인간은 하느님 자비가 내 안에 없는 무자비한 나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도 자비가 없는 무자비한 나입니다.
이제 이렇게 무자비한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청하고,
오늘 복음의 눈먼 이들처럼 자비를 청해야 합니다.
당신 은총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자비를 청해야 합니다.
당신 빛으로 빛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조명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