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이 여는 하느님 나라
대림절은 겨울 들녘 한가운데 놓인
작은 촛불 하나와 같습니다.
찬 바람은 그 불씨를 쓰러뜨릴 듯 흔들지만
그 작은 빛은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
어둠을 이겨내는 법을 압니다.
프란치스칸의 마음도 이와 같아
가난한 자의 주머니처럼 가벼우나
하늘을 담을 만큼 넉넉하고,
작은 자의 손바닥처럼 초라하나
구원을 품을 만큼 깊습니다.
1. 기다림은 가난한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많음을 소유한 자의 기다림이 아니라
비워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순결한 기다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의 중심을 내려놓고
아기처럼 작아져 형제자매의 눈높이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대림절의 영혼도 스스로 낮아질수록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더 가까이 듣습니다.
비워진 마음은 새벽의 빈 들판처럼
한 줄기 빛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빛은 작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그릇을 더 사랑합니다.
2. 희망은 어둠의 깊이에서 움트는 씨앗
하느님 나라를 보물로 아는 이들은
세상의 성공에 희망을 두지 않습니다.
희망은 찬 바람에 쓰러진 억새의 뿌리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더 단단해지고,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물처럼
하느님 안에서 계속 흐릅니다.
희망은 하늘에서 내리는 깊은 숨결입니다.
조용히 내려앉아 우리의 상처를 덮고,
우리의 결핍을 감싸며,
우리의 두려움을 넘어 하느님께 다시 서게 하는
은총의 힘입니다.
3. 사랑은 관계 안에서 태어나는 빛
사랑은 혼자 빛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쪼개고 나누면서 더 밝아지는 빛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작은 마구간과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본 이유도 사랑이 ‘낮은 곳’에서만
본래의 향기를 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에 태어나는 사랑도 언젠가 내어주기 위해 오는 사랑입니다.
관계 안에 선을 낳고, 적대의 벽을 허물고, 나를 비워 타인을 살리는
하느님 나라의 첫 열매입니다.
4. 하느님 나라를 보물로 보는 이들의 기쁨
하느님 나라를 보물로 인식하는 이는
세상이 버린 작은 돌멩이에서 성전을 보아 내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만 있는 약속이 아니라,
오늘의 숨결 속에 이미 와 있는 살아 있는 빛입니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하루를 보물처럼 간직합니다.
왜냐하면 작은 친절 하나, 작은 용서 하나, 작은 내려놓음 하나가
하느님의 나라를 열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행위들은 아무도 모르는 들국화의 은은한 향기처럼
세상을 밝히고, 가난한 오두막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불빛처럼 길 잃은 이를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보물로 여기는 이들은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처럼 기뻐하고,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처럼 가슴이 생명의 떨림으로 가득합니다.
5. 그 기쁨은 세상에서 빼앗을 수 없는 기쁨
그 기쁨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서 오며,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에서 태어납니다.
그 기쁨은 불완전한 존재가
하느님께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선물처럼 받는 감격이며,
그 사랑을 타인에게 흘려보낼 때 오히려 더 깊어지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은 모르는 빛, 그러나 세상을 살게 하는 빛입니다.
작아질수록 빛은 더 가까워지고,
비워질수록 사랑은 더 넉넉해지고,
가난해질수록 하느님 나라는 더 선명해집니다.
이 진리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대림절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하늘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작은 빈자리에
왕국을 심으시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그 신비 안에 사는 이들의 기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