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주님의 잔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세상 잔치와는 다른 주님의 잔치라는 걸 얘기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첫째는 차별 없이 모두가 초대되는 잔치입니다.
이사야서는 모든 민족을 위해 주님께서 잔치를 베푸신다고 얘기하고,
복음에서는 다리 절고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들과 그 밖의 다른 불구자들을
사람들이 데리고 와도 주님께서 내치지 않으시기에 모두 함께하는 잔치입니다.
그렇겠지요.
당신 잔치의 초대에 어떠한 차별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과 차별 면에서 차별이 없다면
그런 분은 주님도 아니라고 해도 되겠지요.
그런 분이 무슨 주님이고 그런 분을 우리가 우리 주님으로 섬길 필요 있겠습니까?
그런 분이라면 나도 차별당하고 초대받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잔치에 주님께서 차별 없이 모두 초대하신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잔치는 주님만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서로 차별하지 않는 잔치이고,
나만 초대받길 원하지 않고 같이 가야만 갈 수 있는 잔치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저 절름발이하고는 같이 못 가겠다고 하거나
저 눈먼 사람이나 말 못하는 사람과는 같이 못 가겠다고 하면
입장이 아예 거부되는 잔치입니다.
제가 매년 뙤약볕에 포르치운쿨라 도보 순례를 하면
제일 못 걷는 사람을 맨 앞에 세우고 걷는데 성질 급하거나
더위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앞질러서 빨리 가려고 하는데
이것처럼 초대받아 갈 때 같이 가는 것이 힘들다고
같이 가지 못하고 혼자 가려고 하면 거부되는 잔치입니다.
주님의 잔치가 세상 잔치와 세 번째로 다른 점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더 가고 싶어 하고
비장애인보다는 장애인들이 더 가고 싶어 하는 잔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잔치가 주님의 잔치라는 말입니다.
사실 세상 잔치에 귀빈으로 초대되고 거기서 맛있는 것 실컷 먹는 자는
주님께서 당신 잔치에 귀빈으로 초대해도 거기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잔치가 산 위에 차려지는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리 저는 이와 눈먼 이를 초대하면서 왜 산 위에 잔치를 차리십니까?
산 위에 잔치가 차려지면 다리 저는 이와 눈먼 이가 가기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산 위에 올라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가 있는 사람,
그 산 위에 오르고픈 열망이 있는 사람만이 그 힘든 산을 오를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산 위 잔칫상에 갈 마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배고픈 사람이 천상 잔치에 가고픈 열망이 크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과 달리 마태오 복음이 주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시고,
산 위에서 잔치를 차리고 초대하신다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서 배고픈 사람과 그들과 함께하려는 사랑 많은 사람만
산 위에서 차려지는 주님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가르침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