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는 것도
노아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하는 두 사람을
언급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언제 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데려가고 누구는 버려둔다고 할 때
그 기준은
사람의 아들이 언제 오는지 아는 것과는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그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깨어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종말을 생각하지 않기에
노아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보였을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삶이 당장 오늘 내일 안에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주의 문이 열려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 깨어 준비한다는 것은
마지막이 있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오늘 내일 우리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것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겸손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겸손하게 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겸손한 삶의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는 마지막을 비극으로 맞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삶 앞에 겸손함은
하느님 앞에 겸손한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겸손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