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오는 만족과 나눔의 기쁨
오늘 우리는 신앙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위로부터 오는 만족, 그리고 그 만족을 나누며 누리는 더 큰 기쁨”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삶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프란치스칸 영적 삶의 지도로써 목적이요 과정이며 복음의 핵심을 살아가는 믿음의 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믿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만족하게 사는 법을 안다.
먼저 우리는 이런 사실을 고백합니다. 믿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만족하게 사는 법을 압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만족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만족은 성취, 효율, 결과, 소유와 독점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의 만족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평화,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은총 속에서 자라납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하루는 내가 만드는 하루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하루다.” 이렇게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간단한 영적 태도 하나가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평범한 하루를 만족과 감사로 채웁니다.
2. 자신의 힘으로만 살려고 할 때 만족은 사라진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은 자기 힘으로만 인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노력과 능력으로만 하루를 꾸리려 할 때 마음은 서서히 메말라 갑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불안의 증가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느끼니 늘 “혹시…”라는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합니다. 둘째 비교의 습관입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만족은 언제나 타인의 더 큰 성취에 눌립니다. 셋째 평화의 부재입니다. 아무리 이뤄도 부족하고, 아무리 채워도 아쉽습니다. '충분하다'라는 감각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족을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만족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3. 위로부터 받아 사는 삶 – 신앙인의 만족의 뿌리
신앙인의 만족은 단 하나의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위로부터 받아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를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축입니다. 받아 사는 사람은 압박보다는 감사로 하루를 엽니다. 두려움보다는 신뢰로 걸어갑니다. 계산보다는 맡김으로 행동합니다. 그는 모든 순간을 이렇게 바라봅니다. “이것도 하느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이 만남도, 이 기다림도, 이 고독도, 이 기쁨도…”이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만족은 상황에서 오지 않습니다. 만족은 신뢰에서 옵니다.
4. 만족은 ‘받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 영적 가난의 진정한 의미
사람은 받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은 채움의 경험이며, 그 채움은 하느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총을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비어 있으니 받을 수 있고, 받을 수 있으니 만족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받았으니 만족한다.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이 가난함은 비참함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열림이고, 그분을 받아들일 공간입니다.
5. 만족은 은총을 알아차리는 민감성에서 자라난다.
위로부터 받아 사는 사람은 일상 속에서 은총을 인식하는 섬세하고 정교한 감수성을 갖습니다. 아침의 햇살, 꽃과 바람과 날씨와 나무들, 사시사철의 계절 변화, 누군가의 작은 친절, 뜻밖에 주어진 고요한 시간, 실패 속에서 배우는 인내, 그리고 외로움 속에 피어나는 기도… 이 모든 순간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이 영적 민감성은 감정이 아니라 신뢰에서 비롯되는 능력입니다. 이 신뢰를 통해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갖고 그 뿌리에서 만족이라는 열매가 자라납니다.
6. 받은 은총은 흘러가야 한다 – 관계적 선 -나눔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느님
여기까지가 만족의 기초라면, 이제 만족이 완성되는 자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은 ‘내 안에 저장하라’는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은총은 흘러가도록 설계된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은총은 우리를 거쳐 누군가에게 전해지도록 준비된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받았으니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눔은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행위가 아닙니다. 진정한 나눔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그가 어떤 상처를 지녔는지, 어떤 외로움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보고 그 마음에 맞게 받은 거저 받은 은총의 선물을 건네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과 닮아있습니다.
7. 나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더 큰 만족
영적 삶에서 중요한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받을 때 느끼는 만족보다, 나눌 때 느끼는 만족이 더 큽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은총은 흘러갈 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머물면 멈추지만, 흘러가면 생명을 나누는 힘이 됩니다. 둘째, 나눔은 하느님의 방식을 닮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내어주시는 분’입니다. 나눌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선에 참여합니다. 셋째, 나눔은 타인의 변화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목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건넨 작은 위로가 상대의 마음을 살리고 희망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깊은 감동과 감사에 젖게 됩니다. 이 감동이야말로 감격하게 하고 깊은 만족의 정수인 감탄하게 합니다. 받는 만족은 개인의 영혼을 살찌우지만, 나누는 만족은 세상을 살립니다.
8. 결론 – 충만한 삶은 ‘받음과 나눔’ 두 날개로 완성된다
우리는 위로부터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받은 은총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받을 때 우리는 채워지고, 나눌 때 우리는 넘칩니다. 받음은 만족을 낳고, 나눔은 큰 기쁨을 낳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충만한 삶,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풍요로운 삶’ 하느님 나라의 현재를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제가 위로부터 받아 살게 하시고, 받은 것을 행동하는 자비로 관계 안에 선을 행하도록 넉넉한 마음을 주소서.” 이 기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깊은 만족과 기쁨으로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