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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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루카 18,38-39)
눈먼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요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다
눈먼 사람은 인간의 수단으로는 시력을 회복할 수 없고, 하느님의 거룩한 능력과 권위를 힘입어야만 그럴 수 있다는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전능하신 히느님께 나아가듯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아마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도 유대교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 밀씀들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의 이런 노래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돌이키지 않으실 진실이라네. 나는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좌에 앉히리라”’(시편 132,11). 또한 그는 이시야 예언자의 이 말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 이사야는 이렇게도 말했지요.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이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이사 7,14; 마태 1,23). 그는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당신을 낮추시어 거룩한처녀의 몸을 빌려 사람 몸으로 태어 나셨다는 것을 이미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나아가듯이 지금 그분 앞에 나아가 이렇게 간정하는 것이지요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4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루카 11,27).
모름지기 사람은 범사에 자기 자신을 내적으로 변모시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를 보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할수 있는 한 제 속에서 그분이 하신 모든 일과 똑같은 것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일하면, 그분께서 받으실 것입니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여러분의 일을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을 본떠서 하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과 일을 위한 모범이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여러분은 묻는데,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깨닫기를 바란다. 바로 앞에서 상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했는데, 여러분은 그것만을 여러분의 생활 방식으로 삼아야 한다." 이 특별한 설교에서 그는 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란 “여러분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가 살았고, 우리가 살아내야할 상, 곧 맑고 투명한 신성의 상이다.(505)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10-13장 / 야고 1-5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야고 3,1-12
말조심
나의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이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를 보십시오. 배가 아무리 크고 또 거센 바람에 떠밀려도, 키잡이의 의도에 따라 아주 작은 키로 조종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혀도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지만 큰일을 한다고 자랑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수풀을 태워 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혀도 불입니다. 또 불의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혀가 우리의 지체 가운데에 들어앉아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행로를 불태우며, 그 자체도 지옥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과 길짐승과 바다 생물이 인류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으며 또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같은 샘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이 솟아날 수 있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내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낼 수 있습니까? 짠 샘도 단 물을 낼 수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