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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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루카 17,1-2)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은 불행하다
경고 말씀에 이어서 죄지은 형제자매를 용서하라는 말씀은 죄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비열하고 불쾌한 행동들,정당한 이유가 있든 없든 성내고 모욕하고 모함하고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히는 짓들이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그런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까? 어림없는 생각입니다! 어떤 악한 것도 그분한테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모든 덕의 원천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기록된 대로(야고 3,2 참조), 나약한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그래서 많은 일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남을 죄짓게 하는 자는 불행하다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냥 못 본 척 넘어가지 않고 꾸중하시며, 벌을 각오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짓게 하는 자들을 참고 견디라고 이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4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루카 11,27).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목표는 세례자 요한도 아니고 다른 어떤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가 동경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본받고, 하나가 될 만한 모범이십니다. 우리의 본성이 그분과 같아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러한 합일에 꼭 맞는 일일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무한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하고 거룩한 성인이 하늘나라에는 없습니다. 한 성인이 쌓은 덕들은 헤아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는 자신이 쌓은 덕의 등급에 따라 내세에서 평가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의 그의 완전성 여부는 그러한 평가로 결정될 것입니다. 실로, 하늘나라에 있는 가장 위대한 성인의 완덕을 능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덕이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하늘나라에 있는 어떤 성인보다 더 거룩할 것이고,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 살아 계신 것만큼이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겸손하고 더 낮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더 위대해질 것입니다. 은총 안에 머무르면서 완전한 포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참된 겸손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모든 일과 담담하게 대면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참된 겸손일 것입니다. 두 번째 겸손은 영의 겸손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모든 좋은 것을 돌리고,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이 거들어 주셔서 우리도 그렇게 겸손해질 수 있기를. 아멘.(501)
<금주간 성서읽기> 히브 3,7-19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히브 3,7-19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반항하던 때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하셨는데,
듣고도 반항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모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또 하느님께서는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화가 나셨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들, 시체가 되어 광야에 쓰러진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또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보듯이, 과연 그들은 불신 때문에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히브 3,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