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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Oct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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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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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루카 11,42-44)


아름답게 꾸민 드러나지 않는 무덤은 위선의 표상이다

정터에서 인사받기 좋아하고 회당에서 윗자리에 앉으려고 애쓰는 자들은 무덤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무덤인 자들입니다. 거죽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속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지요. 보십시오, 그들의 위선은 꾸중 들어 마땅합니다. 위선은 하느님과 인류에게 역겨운 염병입니다. 위선자는 겉모습과 말로 자기를 감춥니다. 좋은 평판을 빌려다가 그것으로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감춥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토록 찬미하고 칭송하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지요. 그대는 위선을 오래 감출 수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색 칠한 그림에서 물감이 떨어져 나기듯, 위선 또한 잠깐은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본색이 드러나고 맙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이런 사람이 지상에서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 주목해 보라. 그에게는 불안이 위안이 되고, 슬픔은 기쁨이 된다 ... "돌파가 몰고 오는 기쁨, 곧 실현된 종말론의 기쁨 속에서 “열정과 기쁨이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태어나고. 기쁨과 환희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울로 사도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시간을 넘어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기쁨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실현된 종말론의 경험 속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험 속에서 새로운 시간 감각이 싹트기 때문이다. “때가 찼다. 지금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태어날 때다”라고 엑카르트는 가르친다. “때가 무르익어 은총이 태어났다."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새로 남 내지 우리의 돌파만큼이나 마지막 때, 메시아의 때, 실현된 종말론의 때가 무르익었다. 바로 그러한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간 감각을 경험한다. ”지금이야말로 영혼이 영원속에 보금자리를 칠 하느님의 때다. 지금이야말로 아버지가 외아들을 낳을때다.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엑카르트는 우리가 이생에서 “영생을 직접 알 수 있다”고 역설한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존재를 되찾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승이다. 쉬르만은 엑카르트의 실현된 종말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생은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지금 여기서 다시 살고, 해방이 이루어져서, 하느님과 사람과 세계가 나름대로 동일성을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이 현재에 주어진 행복 속에서 모든 차이와 다름을 삼켜 버린다. 이 복된 동일성이 쪽모이가 아니라 통째로 내 안에 들어 었다. 이는 마치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료가 아니라 통째로 내 안에 있는 것과 같다 17(487)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2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코린 9-16장

<생태 아낌 주간> 물.전기.자동차.구매와 소비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기: 1500~1700년

종교개혁과 가톨릭 개혁


제 3절: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가로의 발전


루터의 유명론적 • 오컴주의적인 견지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테첼이 대표한 토마스주의적인 후기 스콜라학적인 입장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종교개혁 이전의 신학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교회의 교도직에 의하여 해명되지 않고 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비로소 그 불확실성들을 제거하였다. 그동안은 그 문제들이 학파에서 자유롭게 토의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테첼이 자신의 의견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주장하고, 재판관처럼 루터의 대답을 도발시켰다.

루터의 대답은 그 자신의 전 기질에 상응하게 역시 일방적이고 험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학파의 논쟁에서 근본원리적인 대결이 생겨났는데, 그때 토마스주의적 입장이 순수하게만 가르쳐졌더라면 그 입장이 더 우세하였을 것이라고 우리는 오늘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신학이 더 명확하였더라면,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루터의 공격 중에서 많은 것이 무용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사문제만이 아니고 몇 개의 핵심문제만 들더라도 의화론, 미사와 성사에 대한 이해, 교회, 특히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가르침 같은 데에서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모호성에 대해서는, 그 주요 책임이 유명론적인 신학에 있다. 루터는 그 안에서 자라고, 그것으로 생활하고, 그 신봉자임을 엄숙하게 고백하였다. 그는 올바른 토마스주의적 스콜라학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 자신은 모든 것을 유명론적인 입장으로 봄으로써, 실제는 전혀 가톨릭적이 아니고 유명론적이었던 많은 것이 그에게는 가톨릭 교리로 보였다. 이렇게 그는 여러 가지로. 실제로는 가톨리시즘이 아닌 것을 자신 안에서 격투하여 쓰러뜨렸다(Lortz). 나아가 그는 가톨릭 교리를 자주 크게 왜곡하여 서술함으로써 , 그 불명료성을 확대하는데 현저하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객관적인 비판은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종교개혁 본래의 비극적인 근거가 있다. 그것이 루터의 신학적인 자세와 그의 개성과 강하게 결합되었다.(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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