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로 답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이 대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겁주시는 것입니까?
시큰둥하시는 것입니까?
마뜩잖아하시는 것입니까?
결과적으로 거절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실 리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따르기를 원하는 것보다 당신이 더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열망이 10이라면 주님의 열망은 100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이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겁주시거나 엄포를 놓으시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당신을 따르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각오하라는 것이고,
더 비장한 마음으로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사랑으로 따르라고 밝고 긍정적인 어법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고통과 어려움을 각오하라고 어둡고 부정 어법으로 말씀하시는 걸까요?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랑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그러고 보니 당신을 따르라는 모든 말씀에 조건으로 붙은 것을 보니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따르라,
-부모와 자식 형제들 모두 다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루카복음 14장을 보면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미움으로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입니까?
애인한테 차인 사람이 그 미움 때문에 당신을 따르는 것처럼?
아닙니다.
가장 애착하는 사람까지 끊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랑으로 따르라는 말씀이고,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도 무릅쓸 정도의 사랑으로 따르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사실 최악을 각오하는 것만으로는 따를 수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따를 수 없습니다.
최악을 각오하게 하는 그런 사랑 없이는 결코,
주님을 따를 수 없음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