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오늘 주님 말씀처럼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당위성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섬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느님과 재물이 동급이 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하느님이라고 믿는 신앙인이라면
재물이 결코 동급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아니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신앙인인 우리에게 하느님은 섬겨야 할 분이고, 돈은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드신 비유에 대입해 보면 집사가 오직
섬겨야 할 분은 주인님이고, 돈을 써야 할 곳은 주인님의 가솔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아닌 경우에는 이 주종의 전도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종종 얘기하는데 주객의 전도보다
더 심하게 잘못된 것이 바로 주종의 전도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경우에도 이런 주종의 전도 현상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환시 중에 이렇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주인과 종 중에 누구를 섬기는 것이 더 마땅하냐?
종이 아니라 주인을 섬겨야 마땅하다는 것은 신앙인이 아니어도 압니다.
그러므로 신앙인과 신앙인이 아닌 사람이 갈리는 것은
종보다 주인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느냐 여부가 아니라
누가 그에게 주인이고 누가 그에게 종이냐 그것입니다.
신앙이 없고 현명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주인이 아니라
돈 곧 마몬이 신이 되어 돈이 주인이고 돈을 섬깁니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물신주의(Mammonism)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 대신 재물을 신이라고 섬기는 주의이고,
재물의 신인 Mammon을 섬기는 주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신주의자가 아니라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겨야 하고 돈은 잘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쓰는 것이 돈을 잘 쓰는 것입니까?
그것을 오늘 주님께서는 불의하지만 영리한 집사를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으로 보아 집사는 불의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재물로 선심을 썼기에 불의하다고 하지만
집사란 원래 주인의 재물로 선심 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집사란 그도 종이지만 주인과 주인의 종들 사이에서
주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고 다른 종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은 자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영리한 집사라면 이웃에게
선심을 잘 써야 하고 선심을 마구마구 써야 합니다.
우리가 선심을 잘 쓰지 못하고 마구마구 쓰지 못하는 것은
재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여 움켜쥐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 것은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마구마구 주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재물뿐 아닙니다.
재능도 마찬가집니다.
탈렌트는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며 종에게 맡긴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가진 탈렌트 곧 나의 재물과 재능은
내 것이 아니라 실로 주인 것이고 이것으로 나는
마구 선심을 쓰고 있는지 이런 질문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