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모든 거룩한 사랑은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이고 작은 사랑은 자기밖에 사랑할 수 없고,
다른 이의 고통에 조금도 함께할 수 없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통고를 묵상하며 든 생각의 요약입니다.
고통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인간이 어떻게 그리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남의 고통에 함께하지 않음은 물론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심지어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같은 인간인데 그럴 수 있습니까?
남을 괴롭게 하면서 전혀 괴롭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움 없이도 악한 짓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자기를 위한 사랑밖에 없기에
미움 없이도 자기 이익을 위해 악한 짓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러니 사랑이 얼마나 신비합니까?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저 멀리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하고 아프리카의 고통에 함께합니다.
사랑은 진정 모든 것을 함께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함께합니다.
조금도 함께하지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또 모든 것을 함께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합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모든 사람의 모든 고통과 기쁨에 함께합니다.
오늘 통고 축일을 지내시는 성모님이 그러하십니다.
아드님의 모든 고통에 그리고 인류의 모든 고통에 아드님과 함께 아파하십니다.
오늘 묵상은 이것으로 갈음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