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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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31일 연중 제 22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식사에 초대받은 이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겸손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잔칫상에 보여 준 것 같은 허영을추구하지 말고 온유하고 겸손한 당신 삶을 본받으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온유와 겸손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 11,29). 이것은 하느님의 온유하심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온유한 사람은 복되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의 온유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온유한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들어올리시며 구원하십니다. 하느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하여 온유합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며(갈라 5,23),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의 표징입니다(약 3,13.17). 조용하고 차분함과 관대한 중용이라고 하는 두 개의 의미를 지닌 온유는 그리스도와 당신의 제자들 그리고 목자들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박해에 다하는 가운데에도 모든 이에게 침착한 온유를 보여줍니다. 그 온유는 나약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 의거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겸손한 순종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겸손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만심을 갖지 않고 자기자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죄를 자각한 사람이 갖는 태도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으므로 자기는 가치없는 종에 불과하며 죄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 앞에 마음의 문을 열어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인간의 겸손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은 겸손은 주님의 겸손입니다. 그분은 겸손하게 당신을 낮춤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셨고 모든 것들 안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리사이적인 위선이 아니라 진정한 겸손의 마음으로 수종 병자처럼 소외된 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낮추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겸손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굽어 살피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약함 이외는 아무것도 자랑으로 삼지 않고 그들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의 능력에 자신들을 개방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죄의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멸시받는 겸손한 자를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의 지혜를 드러내십니다. 시련에 부딪치면서도 은총의 샘이신 하느님의 전능하신 손에 자기를 맡기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동참하는 사람은 주님처럼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그를 들어 올려 하느님 아들의 영광에 참여 시킬 것입니다.
주님처럼 온유와 겸손을 지닌 참 신앙으로 거듭나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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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1.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떼이야르 드 샤르뎅
존재가 발원한 샘, 그것은 불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불이 땅덩이 깊숙이에서 솟아오른다는 착각에 붙들려, 생명의 빛나는 궤적을 따라 그 불길이 댕져진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자비로이 저희의 이 생각이 거짓이요 착각임을 알게 해 주시고, 당신을 발견하려면 저희가 이 착각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태초에 지성과 사랑을 갖추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태초에〈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은 물질 세계에 존재하게 되는 것들을 다 지배하고, 그것들에 꼴을 갖추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초에 차가움이나 어두움이 아니라 〈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속에서 빛이 서서히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빛〉이 있어서, 끈질기게 그러나 어김없이 저희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저희로 말하면, 저희 자신은 어두움이요 허공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영원한 중심 영역의 바탕이시며 그것을 와해되지 않게 잡아 두고 지속시키는 분이십니다.
시간의 흐름도 공간도 없는 이 중심 영역에서 우주는 솟아 나오고 마지막 완성을 향해 성장해 갑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저희 눈에 아찔할 만큼 거대해 보이는 한계선마저 뛰어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입니다. 어디에나 존재들만이 있습니다. 창조물의 붕괴와 그 원자들의 충돌 이외에는, 어디에나 존재밖에 없습니다.
타오르는 영, 위격적이고 본원적인 불, 합일의 실제적 지향점, 범신론자들이 꿈꾸는 멸아적 융합에 비해 이 실체야말로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사랑스럽고 바람직합니다. 그러하오니 영이시여, 불이시여, 다시 한번 내려오시어 새로 만들어진 이 가냘픈 물질 덩어리에 혼을 불어넣어 주소서. 세상은 오늘 이 새로운 피조물로 새 단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희가 아주 작은 일에서마저 당신께서 하실 일에 참견하거나 미리 내다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께서만 시작하실 수 있으십니다. 저의 기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저의 기도야말로 그것을 마음에서 솟아나게 해 주시는 분은 당신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