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오늘 저는 엉뚱한 관점에서 주님 비유의 뜻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곧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한 탈렌트를 받아 고스란히 돌려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나무라시는데 오히려 주님이 더 문제가 아니신지.
씨 뿌리는 이의 비유에서도 저는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길바닥과 같은 사람, 돌밭과 같은 사람, 가시덤불과 같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길바닥에 씨 뿌리고, 돌밭과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리시는 주님이 문제가 아닌지.
저라면 제 말을 들어줄 사람에게만 말할 텐데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듣지도 않을 사람에게도 말씀하십니까?
같은 논리로 저는 주님께서 왜 한 탈렌트밖에 돈벌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돈을 맡기시느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것을
모르셨기에 돈을 맡기신 거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께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왜 돈을 맡기셨습니까?
악덕 고리 사채업자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라고 하시고,
그래 놓고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못 벌어오면 벌주시는 것입니까?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뜻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그를 믿으셨는데 그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곧 그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고리 사채업자라고 믿은 겁니다.
저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탈렌트를 맡기면 그 정도는 제가 잘 불리리라 하느님께서는 믿으셨는데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한 탈렌트 짜리라고 여기신 것에 불만을 품고
더 나아가 악의를 가지고 한 탈렌트만 맡기셨다고 믿는 겁니다.
한때 제가 그랬습니다.
왜 모짜르트에게는 그 많은 음악적 재능을 주시고,
제게는 이 정도의 음악적 재능을 주셨냐고 불만했습니다.
그런데 악하다고 믿는 것이 악하고
악하다고 어떤 사람을 믿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며,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악하다고 믿는 사람이 최고로 악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주어집니다.
믿는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하다고 믿으면 선으로 받아들이지만
악하다고 믿으면 뭘 줘도 악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탈렌트를 주시건 다섯 탈렌트를 주시건
다 선을 주신 것이고 다 선의로 주신 것이며,
겸손한 성실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분이시지
조금 주시고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을 이렇게 믿을 것인가?
오늘 비유의 한 탈렌트 종처럼 믿을 것인가?
믿음의 선택을 요구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