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 좁은 문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설명하십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고 해서
하느님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옳은 일을 실천하였는지 물으십니다.
즉 실천이 따르지 않는 앎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좁은 문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을 보면
실천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지식을 쌓아가면서 신앙을 배우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관계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는 여러번 들어왔고
심지어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도
사랑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쉬운 계명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온전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즉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앞설수록
상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받는 사람도 그것을 좋아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오히려 관계가 어긋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실천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실천해 나갈 때
구원의 문은 점점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