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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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마음과 정신과 목숨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지식의 듣불로 환하디 환한 빛을 받는 영혼과 하느님 말씀으로 가득 찬 정신을 지니고서 하느님의 지혜 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받은 모든 은사에서 확인된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실로 이런 모든 은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서와 예언서 모두가 하느님께 관한 지식과 지혜의 일부임을 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서와 예언서는 모두 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원칙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과 신심의 완성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1
세가지 탄생
우리의 탄생, 하느님의 탄생, 하느님 자녀인 우리의 탄생
평화로운 침묵이 온 세상을 덮고 밤이 달려서 한고비에 다다랐을 때(지혜 18,14).
액카르트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철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알려지려면, 먼저 하느님의 탄생이 우리 한가운데서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성과 이해력으로 이제까지 많은 진리를 터득해 왔고, 앞으로도 심판의 날이 될 때까지 많은 진리를 터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영혼의 터와 이 터에 자리한 지식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성탄절이 주는 의의다.
그리스도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리스도가 몸소 내 안에서 육신이 되지 않고, 그래서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452)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5-7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아우구스티노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 130
IX 우리는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면서 끊임없는 동경 속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경이 채워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적으로 먼 거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 중에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 말의 내용을 좀 더 의식하면서 우리가 동경하는 것을 좀 더 강하게 동경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강하게 그리워하면 할수록 그것은 그만큼 더 잘 성취하게 됩니다. 사도께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하신 말씀은 영원한 행복, 즉 영원한 삶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영원한 삶만이 우리의 동경을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실 이 영원한 삶을 항상 그리워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항상 기도합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해진 일정한 시간에 기도의 의무를 채우기 위해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동경이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과 걱정거리들에 의해 쉽게 사라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문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우리가 동경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이미 식기 시작한이 동경이 완전히 싸늘하게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더욱 불타올라야 할 이 동경이 완전히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립 4,6).
이 말씀을 마치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하느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드리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보다 훨씬 더 그것이 인간들 앞에서 늘어놓는 자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수행하는 인내를 통해서 우리에게 좀 더 깊이 인식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천사에게 알려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께 이것을 알려드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우리에게 공개적으로나 혹은 몰래 가르쳐주게 될 것입니다. 성서에 한 천사가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신 토비트가 기도할 때와 또 사라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고 영광스런 주님께 그 기도를 전해 드린 것이 바로 나였습니다(토비 12,12).(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