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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3일 연중 제 18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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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8월 3일 연중 제 18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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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3일 연중 제 18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갈망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모든 갈망의 근원에는 인간의 근본적 결핍과 존재의 충만과 확장 속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기본적 욕구가 있습니다. 성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갈망을 가졌으며 이 갈망에는 올바른 갈망과 그릇된 갈망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올바른 갈망은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갈망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는 갈망(잠언 5,19; 집회 1,20), 예루살렘에의 향수(시편 137,5), 거룩한 도시나 성전에 올라가고자 하는 원의(시편 122,1), 어떤 형태이든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시편 119,20.131.174) 등의 밑바닥에는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깊은 갈망이 있습니다. 이 갈망은 인간 잘못된 갈망을 정화하고 집착과 위장된 가면을 벗기고 모든 기만을 극복하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영적인 힘을 줍니다.
그릇된 갈망은 인간으로부터 뽑아 버릴 수 없을 정도로 늘 따라 다니는 근본적인 것이므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위험한 유혹이기도 합니다. 성서는 이러한 잘못된 갈망의 슬픈 결과를 보여줍니다. 사막에서 굶주림에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신앙의 갈망 보다 이집트의 고기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메추라기를 보며 하느님을 망각하게 됩니다(신명 8,1-5). 그리하여 그들은 이 잘못된 갈망에 희생되어 죄를 범하고 죽어갔습니다(민수 11,4.34). 그릇된 갈망에 떨어져 다윗은 밧 세바를 남편으로부터 빼앗고(2사무 11,2-4), 이 죄는 다시 많은 죄와 파멸을 초래합니다. 또한 아합은 자기의 잘못된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벨의 권고에 따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음으로써 왕조의 멸망을 초래합니다(1열왕 21장). 분별을 잃을 정도로 수산나에 대한 욕정에 불타던 두 노인은 죽음으로써 그 죄를 보상합니다(다니 13,820.62).
그릇된 갈망은 다른 말로 욕심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욕심은 성서상의 의미로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뜻하는데 다른 사람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까지 보다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그릇된 갈망을 의미합니다. 욕심은 넓은 의미로 탐욕, 곧 사악한 갈망입니다. 이 욕심의 특성은 이웃사랑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고 주로 재물과 금전 등의 물질적 재화를 끝까지 탐하는 데 있습니다.
성서는 욕심에서 생겨나는 여러가지 악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욕심은 이웃에게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며 우상숭배의 행위를 조장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에서 나오는 이 우상숭배는 돈을 사랑하는 것(루카 16,14), 하느님께만 향해야 할 마음을 피조물에 향함으로써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을 경시하고 피조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마태 6,21-24).
그러므로 돈 욕심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 소멸된 현세의 재물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에 비교하면 별 가치가 없습니다(루카 6,20.24). 그러므로 우리의 갈망은 잠시 지나가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천상적이고 영적인 가치들에 마음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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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8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베드 3-5장 / 2베드 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일요일 성체의 날✝️
성체성사(현존, 희생, 그리고 친교의 신비) / 로렌스 페인골드
제 1부
기초
제 1장
그리스도께서 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는가?
성체성사에 대한 적합성의 이유들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이유는
곧 그분이 사람이 되신 이유와 같다
우리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더 깊이 있는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이유는 곧 그분이 강생하신 이유와 동일하다.
강생의 동기는 그분의 수난과 성체성사 제정의 동기와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체성사가 단순한 부가적 발상이거나,
부차적이고 외적인 의식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에 본질적으로 결합된 신비이며, 가톨릭 신앙의 중심이자 심장부에 자리한 진리이다.
성체성사는 강생과 수난과 동일한 하느님의 논리에 따라 주어졌다.
그것은 이 신비들이 교회 안에서 반복적으로 실현되도록 지속시키는 성사적 연장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영광 중에 오실 때까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강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제2위격,
곧 하느님의 아들께서 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인간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셨는가?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가운데 머무르시고,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와 친밀한 우정을 맺기 위함.
2. 완전한 덕의 모범을 삶으로 보여주시기 위함 —
특히 사랑, 겸손, 순명, 신앙심, 관대함, 용기를 중심으로.
3. 믿음을 통한 최고의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
4. 완전한 정의 안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을 바치시고,
우리의 구원 희망을 북돋아 주시기 위함.
5.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동기를 주시기 위함.
6. 성화 은총을 통해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그분의 신부로 세우기 위함.
7.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높은 존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드러내기 위함 —
곧,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친교를 나누는 존엄.
8. 우리를 그리스도와 ‘혼인적 일치’로 이끄시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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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목적은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성화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화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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