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육하의 도구로써의 원형 (천사들의 성 마리아 포르치운쿨라 축일에)
성 프란치스코와 성모 마리아의 관련성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의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신심을 넘어, 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과 깊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두분의 관련성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육화(강생)의 신비는 가장 깊은 연결고리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신심의 심장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즉 육화의 신비에 대한 깊은 사랑입니다. 그는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난한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격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이러한 강생의 신비는 성모 마리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마리아는 하느님을 세상에 모셔온 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질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신 분이었습니다. 그가 1223년 그렉치오에서 최초로 성탄 구유를 재현한 것은 바로 이 강생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그 중심에는 당연히 아기 예수를 낳아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낳아주신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둘째 모후(母后)이자 변호자, 그리고 가난의 모델, 프란치스코는 당대 기사도 문학의 영향을 받아, 마리아를 자신의 모후이자 수호자로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과 그의 모든 형제들(프란치스코회)을 마리아의 보호에 맡겼습니다. 그의 첫 전기 작가인 첼라노의 토마스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우리를 위해 자비를 얻게 하시고 영광의 주님을 우리의 형제가 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말로 다할 수 없는 애정으로 사랑했다." 그에게 마리아는 하느님 앞에서 인류를 위해 대신 말씀해주시는 가장 강력한 변호자였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낳은 어머니였기에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가 '가난 부인과 결혼했다고 표현할 만큼 가난을 사랑했는데, 마리아는 이 '가난'의 가장 완벽한 모범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오직 하느님의 뜻에 순명함으로써 가장 부유한 존재, 즉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는 프란치스코가 추구한 가난의 영성을 완벽하게 체현한 인물이었습니다.
셋째 포르치운쿨라 마리아의 품 안에서 시작된 프란치스코회, 성 프란치스코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는 아시시의 작은 경당인 포르치운쿨라였습니다. 이 경당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곳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낡은 경당을 직접 수리했고, 이곳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명확히 깨달았으며, 그의 수도회(작은 형제회)가 실질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임종 때에도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포르치운쿨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삶과 수도회 전체를 시작부터 끝까지 성모 마리아의 품 안에 두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회는 말 그대로 '마리아의 집'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마리아는 가난과 겸손의 완벽한 모범이었으며 프란치스칸의 이상을 가장 먼저 살아낸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와 마리아의 관련성은 매우 깊고 본질적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신심 안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로 가는 가장 확실하고 따뜻한 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했기에, 그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어머니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마리아는 길을 비추는 별과 같이, 가장 완벽한 믿음의 원형(原型)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그분의 위대함은 세상의 영웅들처럼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한 업적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삶 전체는, 한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을 얼마나 온전히 수용하고 그분의 뜻에 투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겸손하고도 장엄한 증거입니다.
그 여정의 시작부터 하느님의 주도권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원죄 없는 잉태'는 마리아께서 어떤 선행이나 공적을 쌓기 이전에 주어진 근원적 선물이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의 거처가 될 한 영혼을 순수하고 흠 없는 상태로 미리 준비하신, 온전한 은총의 행위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삶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 즉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느님의 선행하시는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리아의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겼기에 위대했습니다. 천사가 전한 잉태의 소식은 한 처녀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따져 묻지 않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는 나자렛에서의 30년간의 침묵 속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신앙의 모습이며 우리 각자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그 믿음의 절정은 아들 예수의 십자가 아래에서 가장 고통스럽고도 찬란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모든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의 순간, 제자들마저 흩어진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도망치지 않고 아들의 마지막을 신실하게 동반했습니다. 그 모습은 단순한 영웅적 인내를 넘어, 사랑하기에 끝까지 함께 아파하는, 가장 깊은 차원의 신앙적 응답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분의 신앙은 개인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마리아는 교회의 중심에서 다른 제자들과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이는 그분이 신앙 공동체와 함께 걷는 '교회의 어머니'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결국 마리아의 삶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분은 위대하고 화려한 힘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범하며 순명하는 한 영혼을 당신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가 그러했듯이,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할 때,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마리아가 우리에게 전하는 구체적인 삶의 초대입니다. 마리아의 품은 예수님을 품는 품이며 우리가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품는 품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