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여라.”
“걱정하지 마라.”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주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시며 그러나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주민 아이들과 부모들과 지금 캠프를 하는 저는
걱정은 몇 살부터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중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있기 때문이며
오늘 오후에는 바닷가 물놀이도 할 예정이어서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에 온다고 할 때 아이들은 다른 프로그램은 뒷전에 있고,
물놀이에만 관심이 있는데 저는 며칠 전서부터 걱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떠나는 날도 수도원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진정 몇 살부터 걱정할까요?
그리고 왜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고 어른은 걱정할까요?
제 생각에 아이들은 선을 기대하고 어른들은 악을 걱정하며,
아이들은 현재를 살고 어른들은 미래를 앞당겨 살고,
아이들은 걱정을 어른들에게 맡기고 어른들은 자기가 걱정을 안고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 말씀대로 어른처럼 조심하고
아이처럼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물놀이를 예로 들면 물놀이할 때 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곧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도 하고 준비는 철저히 하되 어린이처럼 걱정은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조심(操心)이란 한자어로 마음을 잡는다는 뜻이고
방심 곧 흩어져 있는 마음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죄의 악이든 자연적인 악이든 우리는 악에 대해서는
교만으로 인해 방심하지 말고 늘 조심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악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선만 있기를 기대하지 않고 악도 각오해야 하며
많은 경우 최악을 각오하며 마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영역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걱정은 하지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을 각오는 하되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고
걱정은 하지 말고 기도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걱정하다가 즉시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걱정거리만 보고 있다가 즉시 시선을 하늘로 옮는 것이며,
걱정을 즉시 기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자꾸 걱정하는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