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누구를 주님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그의 종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이 아니고,
마음으로 주님이지만 실천으로는 주님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주님이 입에 있는 종이 있고,
주님이 마음에 있거나 실천에 있는 종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남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라는 인간의 종으로서의 역사를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자기주장이 강하고 제 뜻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했을 때
수도원에 살면서도 저는 주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말로만 곧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한다고 나무라시지만
저는 입으로도 주님을 부르지 못한 종이었습니다.
내가 왜 종이야? 내가 왜 주님의 종이야? 하곤 했는데
종이라는 것이 싫어서 주님의 종인 것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삼십 중반이 지나서 주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마음으로 주님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이때 제일 많이 기도한 것이
삼종 기도의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입니다.
의지의 작용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저의 정체성을 명심하고 각인하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후 저는 인사이동 때 어디 가고 싶다,
어디는 가기 싫다고 하지 않기로 했고,
그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에서는 주님의 뜻대로 실천하려고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는 의지가 작용하지 않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 좋을 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좋을 대로 하기에 주님의 뜻을 생각지 않거나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 좋을 대로 하곤 합니다.
내 좋고 싫은 것 곧 내 감성에
내 이성이 마비되거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요즘 무엇을 먹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습니다.
생각 없이 입맛대로 먹지 입맛을 주님께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옛날 저는 프란치스코가 밥에 물을 타거나 재를 뿌려서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맛있는 것을 골라 먹지 않으려고 했고
더 근본적으로 맛을 제 입에서 없애려고 곧 맛 있고 없고가 없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프란치스코처럼 주님께 입맛을 맞추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내가 프란치스코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프란치스코처럼 맛을 초월한 인간이 되고 싶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주님의 종이 되려면 나의 싫고 좋음이 없어야 하고,
그것도 주님 때문에 나의 싫고 좋음이 없어야 하며,
욕망까지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감성과 욕망까지 주님의 종이어야 하고,
좋아하는 것과 욕망하는 것이 주님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인데
그러니 주님의 은총을 청하며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