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트라우마 9
- 향기로움 -
1
인공적인 조형미가 사라진 정원을 여유롭게 걷노라니
몸과 마음 안에 서서히
진선미가 서기 일듯 어린다.
그렇게 편한하게 걷다 부드러운 잔비밭으로 옮겨
조금 깊게 호흡을 한다.
몸과 마음 안에 어리는 진선미가
잔디밭의 부드러움에 실려 더 강하게 증폭된다.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진선미를 응시하다
주위의 나무에로 시선을 던진다.
2
숲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는 선명한 삼나무들
그렇지. 저 나무들은 빛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이지.
빛을 향해, 빛!
빛을 그리워 하는 삼나무들의 시선을 따라
저 멀리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삼나무로 가까이 다가가
들고 있던 컵을 풀밭에 내려놓고 조용히 포옹한다.
사랑스런 사슴을 포옹하듯
온 몸으로 부드럽고 따듯하게
3
삼나무와 하나가 되듯
뺨을 지긋이 굵은 나무 줄기에 대어 본다.
나무 향기가 여리고 은은하게 코끝을 스친다.
눈을 감고 고요히 향기로움에 젖어든다.
긴긴 세월, 대지 속으로 깊이깊이 뿌리를 박고 빛을 받아
온 존재로 빚어내는 향기
대지의 향기,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무덥고, 때로는 한파 속에 쏟아자던 햇빛의 향기,
은은한 달빛의 향기,
초롱초롱한 별빛의 향기가
코끝을 타고 온 몸으로 스며 들어온다.
수만 광년 저 멀리 무수한 별들의 빛,
은하들의 빛이 향기롭게 느껴진다.
우주의 향기, 초월의 향기, 신비의 향기 속으로 깊이 잠겨든다.
4
그윽한 향기,
무한히 평화로운 향기,
이 향기 속에 파묻히자.
감미로운 이 향기 속에서 행복하게 죽자.
우주적인 초월의 향기 속에 파묻혀
육신이 향기롭게 사라지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고, 복된 죽음이구나.
죽음이 축복이구나
죽음의 축복을 통해 나의 존재가 향기로운 향기,
우주의 향기로 산화되는구나
죽음은 신비이고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구나
죽음에 대한 의식
그동안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죽음이 부서진다.
선명하게 남아 있던 살모사의 이미지가
힘없이 부서지듯,
죽음 의식이 산산이 부서진진다.
5
반듯하게 자리에 앉아
호흡의 흐름을 타면서 명상에 잠긴다.
햇빛의 향기, 달빛의 향기, 별빛의 향기
우주의 향기, 초월의 향기를 가슴에 새긴다.
우주의 향기가 마음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의식의 세계를 넘어
무한히 깊은 구렁 속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무한한 무의식 너머의 광활한 초월 무의식,
존재의 바위 너머 무극의 신비
무극의 신비로부터 피어오르는 향기가
더할나위없이 향기롭구나
눈물이 핑그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