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덕(才勝德)이란 말이 있습니다.
재주가 덕을 이기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런 말이 있는 것은 재주는 많은데 덕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재주만 가지고 책임을 맡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며,
그래서 본인도 공동체 구성원도 불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재승덕(財勝德)이라는 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제가 만들어 낸 말로서 재물은 많은데 덕이 없다는 뜻입니다.
재물이 많지만 후덕(厚德)하지 못하고 박덕(薄德)합니다.
왜 이런 말을 제가 만들어 냈냐 하면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 교회를 이렇게 칭찬하기 때문입니다.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케도니아 교회는 재승덕(財勝德)하지 않고 덕승재(德勝財)하여
가난한데도 후덕한 것이고 주님 말씀대로 하면 재물을 하늘에 쌓은 것이며,
이웃 사랑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한 것입니다.
제가 제일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악덕하고 악독한 사람이고,
그다음으로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박덕한 사람입니다.
악덕한 사람은 선이 하나도 없고 악으로 가득한 사람이며,
악독한 사람은 악이 오래 숙성되어 독하게 된 사람입니다.
어쨌거나 덕(德)이란 선과 악과 관련한 능력이며
우리는 악덕을 쌓기보다 선덕을 쌓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선덕을 많이 쌓아 후덕할 수 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시련 가운데서도 기쁨이 충만하였기에
후덕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시련 가운데서도 기쁠 수 있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의 충만이 후덕하게 한 것입니다.
기쁨이란 뭔가 내가 원하는 좋은 것을 얻었을 때 오는 만족감입니다.
너무도 좋아하고 오래 원하던 것을 얻으면 그만큼 기쁨이 크고 충만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면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집안에 큰 경사가 나면 동네 사람에게 잔치를 베풀지 않습니까?
어제 이사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했는데 우리 이사 가운데
한 분의 형님이 이번에 대통령 수석이 되었다며 한턱내신 것과 같은 겁니다.
물론 그분은 세속적인 성공을 그리 큰 기쁨으로 생각지 않고
그래서 그것을 그리 알리고 싶지 않아 하셨지만
어쨌거나 뉴스로 알려졌으니 한턱내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 교회는 큰 시련 가운데 기쁨 충만하였으니
분명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고 그 기쁨은 천상적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런 말이 인상적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일에서도 뛰어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뛰어날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