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소금과 빛이라고 하십니다.
소금이 되라거나 빛이 되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금이라고 하시고 빛이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그 정도 존재이고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이 말을 들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담스럽기만 하니 꽁무니를 빼야 합니까?
이렇게 인정해 주시니 으쓱하고 자신만만하게 나서야 합니까?
우리는 압니다.
부담스러워하거나 으쓱하는 것 둘 다 안 되고,
이것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정체성으로
우리가 어떤 토를 달지 말아야 할 정체성으로 그저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가 오늘 독서에서 얘기하는 ‘예’이고,
이런 자세로 할 때 우리의 행실이 착한 행실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너는 누구다!’라고 하시면 그저 ‘예’ 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에 그저 ‘예’하는 것보다
‘너는 누구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예’하는 것이 더 순종을 잘하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바오로 사도처럼 당연히 주님의 모든 명령을 충실히 받들 것이고,
주님께서 굳이 뭘 하라고 하지 않으셔도 알아서 종답게 그것을 행할 것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클라라에게 써준 생활 양식에서
‘성부의 딸이며 종’이요 ‘성령의 정배’라고만 할 뿐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활 양식을 얘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주신 ‘세상의 빛’이라는 정체성에 ‘예’한 다음
걸맞게 행동하면 그것이 세상에 모범이 되고 희망을 줌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는 착한 행실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시고,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빛이 되실 때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정체성도 주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선행을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춰 주는 것이라면
세상의 소금은 세상의 불의와 어둠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주님께 우리는 ‘아니오’라고 할 것도 없고
그리 말하지 말아야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소금으로서
‘아니오’라고 할 것이 있고 그래서 꼬박꼬박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쉽습니까?
둘 다 되어야겠지만 하나만 되라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누구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 소금이 되는 것이 어렵고
주님께 ‘예’ 함으로써 세상에는 빛이 되는 것이 쉽기에
빛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겠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쉬운 것 어려운 것을 떠나서
우리는 사랑으로 소금도 되고 빛도 돼야 함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