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죽이고
그것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비슷한 표현이 요한복음 9장에도 나타나는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합의하였다고
전합니다.
주석학자들은
요한 공동체의 경험이 바탕이 된 표현이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죽게 되었습니다.
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은 보통 교육의 의미이고
반성의 시간을 갖고
다시 회당 공동체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다시 회당 공동체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치와 종교가 연결된 사회에서
사회적인 고립을 뜻했습니다.
사회적인 죽음이 두려워서라도
사람들은 쉽게 고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고백을 주저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고백으로 회당에서 쫓겨났고
누구는 죽었습니다.
사회적인 죽음이던 육체적인 죽음이던
죽음의 위협이 그들의 고백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아깝지 않게 생각해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단 하나이고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오히려 사랑 때문에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놓는 것을 가리켰다면
이제 친구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목숨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종교 때문에
육체적 목숨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회적 죽음은 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같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을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사랑 관계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위협에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