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님께 우유 죽을 먹이시는 성모님 Madonna della Pappa(1510)
작가 : 제랄드 다비드 (Gerard David), 1460~1523
크기 : 캠퍼스 유채 41 x 32 cm
소재지 : 이태리 제노바 스트라다 노바(Strada Nova) 미술관
성모님은 우리나라 일부 개신교의 극보수층에서 보이는 부정적인 견해를 제외하고는 종교 유무와 관계 없이 인류 여성의 긍정적인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어떤 때 소녀의 감상처럼 피상적일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차원에서 성모님을 마음으로 공경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모님은 이미 431년 튀르키아의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천명하면서 성모님의 공경은 거의 신격화의 수준을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대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의 속성과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구별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모님 역시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치릴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가 치릴로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성모님의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고 이것이 오늘까지 교회의 주장이 되고 있으나 당시 교회가 새로 시작된 처지에서 이런 것은 어느 정도 시대적 표현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가 새로 시작되면서 자기들이 믿는 종교의 신은 막강하고 전능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은 포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더욱이 교회가 존재 유지에 필요한 제도화의 과정에서 하느님의 힘이나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세상에 모셔 오는 도구로 선택된 성모님의 존재성을 격상시켜 강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요청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인간 예수의 모습이 강조되는 실정에서 성모님의 모습 역시 인간 예수를 키우시는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모습이 그동안 교회 안에서 표현되었던 성모님의 모습에 부족 되었던 부분을 보완하는 균형 있는 표현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참으로 이 시대의 성모 이해에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오늘 네덜란드 지역을 대표하는 프랑드르 학파에 속하던 작가였는데, 이 학파는 비록 로마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그래도 자기 학풍의 독창적인 면을 많이 강조해서 오늘까지도 참신한 모습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는 당시 화가들의 모임인 루카 길드의 회원으로서 많은 화가들이 다 그렇듯이 성미술을 온 정성을 다해 그림으로서 오늘날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다 성미술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우아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주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작품은 그중에서 성모자의 인간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에 너무도 어울리는 것이기에 비슷한 작품을 몇 점 남겼을 만큼 사람들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우선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성모님과는 많이 다르며 또한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성모님의 이미지와도 다른 것이다. 당시 작가가 살던 시대 평범한 중류 가정과 너무도 어울리는 것이며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나자렛이나 베들레헴과 이어지는 성탄 일화와도 다른 것이다.
과거 어떤 성모 도상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오늘도 보잘 것 없는 마음에 불과한 이스라엘 나자렛 출신 처녀 마리아의 모습,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이 신앙 하나만으로 부모의 뜻에 절대적 순종을 하던 처녀의 모습이나 아니면 성모님의 신앙이 하느님께 가납되어 받으신 그분의 영광을 기리는 하늘의 여왕이나 아니면 다른 막강한 힘을 지닌 여인의 모습처럼 상반된 모습으로 부각 되었으나 이 작품은 이런 것과 전혀 다른 모습, 평범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가정을 배경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으로 부각 되었다.
성모님이 아들 예수님을 안고 우유로 만든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성모님의 모습은 당시의 평범한 가정, 큰 부자는 아니나 삶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중산 가정 출신 여인의 모습이다.
장신구도 없는 수수한 차림으로 푸른 옷을 입은 것인 색깔로서 당시 감청색이 가장 비싼 것이기에 성모님의 품위를 나타낸 것이다. 성모님의 어깨에 희미하지만 금빛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으로 성모님의 동정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비록 인간 예수의 어머니이지만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은총의 여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드러나는 것은 품위 있는 고귀한 여인의 모습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수건 역시 마치 수녀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간단한 것으로 기품 있는 어머니로서의 진면모 즉 어린아이의 어머니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품에 안긴 예수님의 오른손에 숟가락이 쥐어져 있으나 성모님이 숟가락을 쥐고 아기 예수를 먹이고 있다. 이것은 예로부터 식탁 예법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이며 성모님 역시 아들 예수에게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식탁 예의를 가르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식탁 매너를 인간 어머니에게 배워야 할 만큼 사람 냄새가 나는 모습이다.
아기 예수가 손에 숟가락을 들고 있으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죽을 먹이시는 죽그릇 앞에 빵 조각과 사과와 함께 칼이 놓여 있으며 이것을 담고 있는 식탁 역시 주방에서 간이 식탁으로 쓸수 있는 간단한 것이며 거기에 놓인 물품 역시 이 식탁에 수준에 어울리는 검박한 음식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작가는 이것이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의 역할을 잘 묘사한 신앙을 담고 있다.칼은 예수님이 받으실 수난을 상징하며 빵과 사과는 주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다는 상징인 성체성사를 상징하고 있다.
성찬식의 상징은 빵과 포도주이지만 아기 예수 앞에 포도주는 어색하기에 작가는 사과를 대신 사용했으나 성찬의 상징으로 합당한 것이기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냥 사랑스러운 모자 관계이나 예수님을 구세주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 초라하지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방 벽면엔 가정의 일상 용구들이 놓여 있다. 한 권의 책, 주부가 시장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천으로 된 가방, 그리고 집안에서 잡동사니들을 모아 두는 광주리가 있다.
집안 분위기가 평범하면서도 격식을 갖추어 살아가는 가정임을 알리면서 아기 예수님은 여느 인간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교육 받으신 것의 강조를 통해 그는 우리와 꼭 같은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교리를 통해서 주님께선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것을 배운 크리스챤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 못지않게 우리와 꼭 같은 약함과 한계를 지닌 인간임을 배우면서 주님께 대한 더 큰 친근감을 키우게 된다.
창밖의 풍경 역시 더 없이 평화롭다. 과거 성화에서는 거룩함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주위의 풍경은 가급적 절제 했으며 하더라도 사과나 꽃 같은 상징적으로 성화와 관계되는 것을 강조했으나 여기에서 작가는 우리 평범한 인간 가정에서 표현할 수 있는 풍경화 수준을 배경으로 등장시키면서 예수님의 가정이 우리의 가정과 같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인성에 대한 친근감을 알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응시하노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성덕에 끌러 속세를 떠나 올라가는게 아니라 우리 주변으로 예수님의 가정을 옮겨 오면서 크리스챤의 삶은 수도원을 찾아 현세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임을 확인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은총이 가득한 여인으로서 아기는 구세주가 되실 비범한 인물로서의 성모자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것이기에 이 표현과 다른 표현을 대비시켜 우열이나 적합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늘의 여왕, 천사들의 어머니 같은 전통적인 성모님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우리의 어머니, 예수의 어미니 같은 일상성을 강조함으로써 성모 신심에 대한 폭을 넓힌 것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차원으로 이 성화는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