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요셉(상욱) 형제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의미요법과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순종의 세 형태를 비긴데 대한 소견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1905- 1984)는 유대인 심리학자로 이차세계 대전 아우스비츠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가 전쟁의 종결로 자유를 찾았을 때 그에게 닥친 것은 해방된 삶의 기쁨보다는 허탈이나 절망이 전부였다
‘사랑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다 게스실에서 사라졌고 , 그의 연구 결과를 남긴 기록조차 다 잿더미가 된 처지에서 그가 살아야 할 아무런 당위성이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때 그가 연구한 것이 바로 의미요법이었다.
이것은 그의 아우스빗츠 수용소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죽음이 유일한 고통의 탈출구로 여겨지는 생지옥과 같은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허약하고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붉은 저녁노을의 장엄함에 감탄하고 지옥처럼 열악한 현실에서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부를 여유가 있는 사람.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병든 동료에게 자신의 빵을 기꺼이 나누어주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보면서 , 박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것을 이론화시킨 것이 의미 요법이라는 뜻의 로고 테라피(Logo Theraphy)이다
그런데 이것은 프랭크 이전 철학자 프레드릭 니체(F.Nitche:1844- 1900 )가 이미 제시한 것이며, 나치 수용소의 열악한 삶의 현장을 산 프랭클의 체험에 의해 재확인된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감동과 설득력을 줄 수 있었다.
요셉 형제는 이것을 창조적 가치, 체험적 가치, 자세적 가치로 구분 설명하면서 의미요법을 우리에게 더 친근감 있게 제시한 다음 이것을 성 프란치스코의 순종의 3가지 차원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여기에서 부터 논리적 단절과 혼란이 느껴진다.
프랭클 박사의 의미요법과 프란치스코의 순종 양식은 다 좋은 것이긴 해도 서로 연결시킬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용한 프란치스코의 순종에 대한 글은 현대에 와서 재해석되어야 할 부분인데, 이것을 원전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정송강의 “사미인곡”을 아무 해석 없이 듣는 것처럼 모호하고 황당한 감회에 젖게 만든다.
먼저 1) 프란치스코의 순종은 누군가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일이라고 자신이 판단하고 , 그 일 자체가 선이라면 ,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가 참된 순종이라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일이라는 이 부분은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긴다.
예수님의 삶은 누군가의 뜻을 거스리는 것에 유의하거나 조심하는 것과 무관한 오직 성부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이나 반대도 감내하는 삶이었음이 성서에 드러나고 있다.
요한복음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라는 단어는 인종적 구분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위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하던 집단을 말하는데, 이런 예수님의 행동 모델에서 “누군가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일”이란 프란치스코의 글을 재해석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란치스코 역시 교회의 여러 인사들처럼 예수님의 행동과 다른 카이사르적인 생활 방식을 주장하며 강요한 위인으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지난 영성 세미나에 강사로 오신 오스본 형제님은 제 16주제의 “프란치스칸 지성 전통에 담긴 사랑과 자유 최종 결론”이라는 강의에서 성 프란치스코 순종의 고귀함과 탁월함은 철저히 복음에 대한 순종이었음을 역사적 사건을 들어 제시하셨다.
본인에게 이 강의는 충격적인 깨우침이었다.
그동안 프란치스칸 순종을 다룬 여러 강사들이나 필자들은 프란치스코가 복음적 사람임과 동시 교회에 순종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짜깁기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프란치스코 역시 다른 수도회 창설자처럼 교회의 교도권을 절대 우위에 두고 그 안에서 복음을 산 위인으로 결론 지웠으나( 본인 생각에 이것은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라 여긴다), 오스본 형제님은 철저히 복음을 최우선에 두고 이 경지를 지키기 위해선 교계와의 긴장이나 충돌까지도 불사하셨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제시하셨다.
역사적 증거로 사부님은 나환우를 교회로부터 추방하고자 하는 전례 규정까지 만든 당시 교회 방침에 개의치 않고 나환우를 형제로 받아들이기 위해 찾아갔고, 베네딕또 수도규칙을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는 교황님의 권고를 다르지 않고 프란치스칸 회칙을 작성해서 인준을 받고자 했고, 프란치스코가 다미에타에 가서 슐탄과 만나 평화의 협상을 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추기경의 뜻도 뒤로 하고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순종의 탁월성이며 오늘 교회안에 큰 문제로 제시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체제의 부작용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좋은 관점이며 프란치스칸으로서 너무도 자랑스러운 면이다.
이런 관점에서 위에 줄 친 부분의 내용은 재해석(Reinterpretation)이 필요한 부분이며 이것이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한 형제들의 몫이라 여긴다.
두 번째 나의 의견과 생각이 너의 것보다 더 좋고 유익해 보이더라도 부분은 타당성이 있으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목적론적 접근이 아닌 방법론적인 경우에만 가능해야 할 것이다
깊은 숙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좀 비효율적인 것이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애덕의 관점에서 가치있다는 것이지 목적성과 관계되는 것이면 거부해야 할 일이다.
이런 원칙이 고려되면서 두 번째 “나의 의견과 생각이 너의 것보다 더 좋고 유익해 보이드라도” 라는 내용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성 프란치스코 순종의 탁월성으로 양심에 어긋나는 것에 대한 불순종의 내용인데, 이런 데 순종치 않음으로 있을 수 있는 어떤 박해나 불이익은 감내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며, 영성적 차원에서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오늘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에 대한 집착으로 복음적인 생기를 보이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있는 교회에 프란치스칸 영성이 새로운 수혈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프란치스칸으로서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껴야 하는데, 순종에 관한 한 더욱 사부님의 예언적인 처신이 오늘의 교회 쇄신에 얼마나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 사상가인 알렉산더 헤르젠(Alexander Herzen:1812- 1870)은 크리스챤 수도생활에서 순명의 해악 부분과 위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모든 종교는 도덕성의 바탕을 순명, 즉 자발적 예속에 두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는 어떤 정치 조직 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정치조직이 폭력을 이용한다면 종교는 의지의 부패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 정치 지도자들에게 민주적 태도를 요구하는 교회가 가장 비민주적인 체제의 내부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지성인들로부터 비난과 실망의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실천에서 발견할 수 있는 3가지 순종의 모델의 바탕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순종을 생각해야 하며 프란치스코 생애의 어떤 사건들 (예: 이몰라 주교와의 관계)을 확대해석해서 종속적인 관계가 곧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가르친 순명이라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이기에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체제와 이 체제의 유지 이론으로 제시되고 있는 종속적 관계인데, 프란치스칸의 순종과 형제성이야 말로 이런 시대착오적이며 복음적 바탕과도 무관한 사고방식으로 사면초가에 빠져있는 교회에 탈출구와 생기를 줄 수 있는 좋은 처방이며 매력이라 확신한다.
결론적으로 김 요셉 형제가 나란히 제시한 프랭클 박사의 의미요법의 세 가지 차원과 성 프란치스코의 순종 개념을 별도의 것으로 다루었으면 더 나을 것 같고, 또한 프란치스코의 글에 나타나고 있는 3가지 순종의 현대적 차원은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한 형제들은 자구적인 뜻에 매달리기 보다 프란치스코 당시 문화 사회적인 맥락으로 재해석해서 정확하고 명쾌히 알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한다.
루돌프 불트만의 탈신화화 이론에 의해 성서 학계에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처럼 프란치스칸 영성 역시 교회의 제도적인 틀안에서 짜깁기 하기 보다 ,복음이라는 넓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재해석 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필자는 오스본 형제님의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수직적 관계의 순명 체제가 성 프란치스코의 교회에 대한 순종인지 조심스럽게 질문했을 때 강사는 너무도 명쾌하게 프란치스코는 중세 봉건 제도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이 아닌 전적으로 복음적 형제성안에서의 순명이었다고 답변했을 때 많은 재속 회원 참석자들이 우뢰같은 박수를 치는 것을 들은바 있다.
이런 면에서 오스본 형제님의 강의는 성 프란치스코의 처신에서 볼 수 있는 바른 순명의 태도를 제시했다는 면에서 참으로 명쾌하고 생기있는 인상을 주었는데, 비해 이 글에서는 프란치스칸 순명의 탁월성과 예언성을 희석시키는 것 같은, 모호한 인상을 받았다.
본인의 프란치스칸 영성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소치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