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4월 6일 토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마르 16,9).
부활 축제 거행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24),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해가 더 이상 어둡지 않고 만물이 빛에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 휘장이 더 이상 찢어지지 않고 교회가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종려나무 가지를 들지 않고 새 영세자들을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 이날이 참으로 그날입니다. 승리의 날, 부활 풍습으로 축성된 날, 특별한 은총을 입은 날, 영적 어린양을 함께 먹는 날, 새로 태어난 이들에게 젖을 주는 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술집으로 달려가지 말고 순교 성지로 서둘러 갑시다. 만취를 대단하게 여기지 말고 절제를 사랑합시다. … 장터에서 춤추지 말고 집에서 시편을 노래합시다.
… 이날은 아담이 해방된 날이요, 하와가 고통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이날은 잔인한 죽음이 벌벌 떨고, 단단한 돌이 부서져 산산조각 난 날이며, 무덤의 빗장이 쪼개지고 치워진 날입니다. 이날은 죽은 이의 육신이 예전의 생명으로 되돌려진 날이며, 끄덕없이 맹위를 떨쳐 온 지하 세계의 법이 폐지된 날입니다. 이날은 주 그리스도의 부활로 하늘이 열린 날이며, 무성하고 풍성한 부활 나무가 인류의 선을 위하여 온 세상을 정원 삼아 가지를 뻗은 날입니다. 이날은 새 영세자들의 백합이 싹튼 날입니다. 죄인들을 먹여 살리던 개울물이 말라 버리고, 악마의 힘이 빠져 버리고 마귀들의 군대가 해산된 날입니다.
-위-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5 만물이 존재의 평등을 공유하고 있다
“평등과 일치가 없는 곳에서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인과 종 사이에는 펑화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참된 평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 안에서 평등합니다. 하느님이 남자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남자의 머리나 발로 여자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둘이 있는 곳에서는 결함이 발견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쪽은 다른 쪽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차이를 만들어 내는 ”같지 않음”은 쓰라린 아픔일 뿐입니다. 거기에서는 어떠한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그러하듯이 우리 사랑도 만물과의 평등한 사귐에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만물이 하느님 안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도, 사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이중적인 에너지, 곧 주고받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에너지를 밖으로 펼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흔쾌히 우리에게 갚는다. 설령 어떤 사람들이 인척 관계나 우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와 더 가까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만물을 대할 때와 똑같은 우정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궁극적 선인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만물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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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프란치스코와 자연의 재앙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그레치오의 은둔소에서 지내고 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친 일련의 재해 때문에 형편이 나쁜 처지에 빠져 있었다. 탐욕스런 늑대 떼가 그 지역의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것이며 옥수수밭과 포도원은 매년 우박으로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그들에게 설교하던 중에 그들에게, "만일 여러분이 나를 믿고 참된 고백을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자신들을 위해 자비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예와 영광으로써 이러한 온갖 재난이 곧 끝날 것이며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축복을 풍부히 내리시리란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태도가 불손하게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간다면 당신의 곤경은 되살아나고 전보다 더 극심해질 것이며 하느님의 분노가 두 배로 가중될 것이라는 것도 또한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마을 사람들은 프란치스코의 충고대로 회개하였다.
그러자 그 순간부터 그들의 고통은 끝이 났다. 위기는 지나갔고 늑대 떼와 우박은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았다. 사실 이웃 땅을 황폐시킨 우박을 동반한 폭풍은 그들의 땅 가까이 와서는 멈추거나 진로를 바꾸어 갔다.
우박과 늑대 무리는 프란치스코와 맺은 계약을 지켰으며 동의한 대로 사람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한 그들을 괴롭히려 하지 않았으며 지금 그들은 선한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너무나 놀라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야생동물들을 복종하게 하고, 숲의 짐승들을 길들이고, 이미 길들여진 동물들을 훈련시키고, 인간의 원죄로 인하여 인간들과 원수가 되었던 맹수들을 다시 순종하게 한 성 프란치스코의 사랑에 찬 경건심에 대해 가장 큰 존경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경건심이며 이 경건심은 모든 창조물을 사랑이란 하나의 계약으로 뭉쳐 주기에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생명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1티모 4,8)주는 덕이다.
리에띠라는 지역에 한 치명적인 병이 소떼와 양떼에게 덮쳐 급속히 많은 소와 양을 죽게 하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한 믿음깊은 사람이 밤에 한 환시에서, 즉시 성 프란치스코가 머물고 있는 수사들의 움막으로 가서 그가 손발을 씻은 물을 얻어 가축떼 위에 뿌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움막으로 가서 성인의 동료로부터 은밀히 물을 구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병든 소떼와 양떼에게 뿌렸다. 그 동물들은 땅에 기진한채로 누워 있었으나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닿는 순간 그들은 즉시 정상적인 기운을 되찾고 일어서서 마치 언제 병들었었느냐는 듯이 목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오상에 닿았던 물의 기적적인 힘이 질병을 쫓아내고 가축들을 치명적인 병에서 구했다.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