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말씀나누기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Feb 23,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마태 5,21)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담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이는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의 계명을 완수합니다. 성내지 않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리는 더욱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명하는 것을 지킨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명하시는 것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보복이 두려워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성내는 사람은 많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폐지되는 것보다 완성되는 것이 더 이롭다는 사실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따라서 그리스도의 계명들이 없다면 율법의 계명들은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성내는 자유가 허용된다면, 살인을 저지를 바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분노 때문에 생겨나니까요. 분노가 없다면 살인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유 없이 성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복이 두려워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의지로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실제로 살인을 한 것만큼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런 죄는 성낸 사람의 죄와 맞먹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정경으로 인정된 그의 서간에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1요한 3,15)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혜를 눈여겨보십시오. 당신께서 옛날에는 율법 안에서 말씀하셨고 지금은 은총으로 명령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리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어떤 계명보다 이 계명을 앞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당신의 계명들 맨 앞에 두셨습니다. 율법은 맨 먼저 “살인해서는 안 된다” (탈출 20,13)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들 간의 조화를 통하여 당신께서 율법과 은총의 창조자이심이 드러나도록, 살인에 관한 계명부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이유 없이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 5,22). 그러므로 이유가 있어서 성을 내는 자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가 없다면, 가르침은 쓸모가 없을 것이며, 재판도 필요 없을 것이고, 죄가 되는 행동도 억누를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합당한 분노는 단련의 어머니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성을 내는 이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닐뿐더러, 성을 내지 않으면 오히려 죄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분별없는 인내는 악의 씨를 뿌리며 게으름을 키우고, 사악한 자들만 아니라 선한 이들도 악을 저지르도록 부추깁니다. 사악한 사람은 꾸지람을 들어도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선한 사람은 꾸지람을 듣지 않으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육신 안에서 선보다 악의 힘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유있는 분노는 분노가 아니라 심판입니다.

-마태오복음 미완성 작품-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3 피조물은 하느님이다
피조물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곳에서 하느님은 하느님이 되신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이 뜻해서 흘러 나온 것이다. … 모든 선은 넘쳐흐르는 하느님의 선에서 흘러 나온다." 피조물을 바람직하게 사랑하려면, 그들의 아름다움과 선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이야말로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선함의 원천이다. ”피조물 안에 있는 선, 피조물의 꿀 같은 달콤함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모아진다." 엑카르트의 심리학은 억압의 심리학이 아니라 기쁨을 지향하는 심리학이다. 그는 우리를 다그친다. 창조계를 등지지 말고, 창조계를 비난하지 말고, 창조계의 선함과 꿀 같은 달콤함을 흡수하라고. 그는 이러한 선의 원천, 곧 하느님에게 이르기 위해서는 창조계의 아름다움 속으로 충분히 들어가고, 깊이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창조계, 곧 하느님의 모든 작품은 완전하다”고 선언한다. 신명기 32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하는 일마다 완전하다.” 창조계에는 우리가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다.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는 창조주가 창조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는 창조계 속으로 우리가 깊이 뛰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엑카르트의 영성은 자연을 기뻐하고, 창조계를 기뻐하는 영성이다. 실로 만물의 선함과 꿀 같은 달콤함 속에는 하느님이 있다. 우리는 기쁨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러한 선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하느님이 자신의 녹아드는 것을 사랑하고, 창조계 안에서 자신의 녹아듦을 음미하고, 스스로 녹아들면서 창조계를 음미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형상인 우리가 그러한 기쁨을 맛보지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으랴.(125)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2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5-8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요한 크리소스토모
새로 세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기쁨
어제까지만 해도 이들은 아직 죄의 노예로서 악마의 권세 아래에 놓여 마치 아무런 의지도 발휘할 수 없는 죄인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녔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이들은 이들의 대열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들은 죄의 사슬을 벗어 버리고 임금이 입는 옷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하늘과 밝기를 시합할 정도로 빛나고, 별들보다 더 밝은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비춥니다. 별들은 밤에만 빛나지 낮에는 결코 빛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차이 없이 언제나 빛을 냅니다. 이들은 영적 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햇빛과도 밝기를 경쟁할 정도이고 어떤 존재들보다 더 뛰어납니다. 미래에 의인들이 빛을 발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주님께서 이와 같은 표상을 사용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마태 13,43) (해보다 더 빛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이들이 오직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만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들을 표현하는 데에 햇빛보다 더 나은 표상이 없기 때문에 이 비유를 동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별보다 더 밝게 빛나고 햇빛보다 더 밝은 얼굴을 가진 이들을 두 팔로 안읍시다.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인 두 팔로 이들을 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절하고 섬세한 사랑과 영적 친밀감을 보여줍시다. 우리는 이들이 우리 주님의 크신 자비를 고찰하도록 하고, 이들이 입고 있는 밝은 옷의 품위에 맞는 생활을 해 나가도록 고무합시다. 성서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갈라 3,27).(189)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