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징으로
사흘 간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마지막에서
니네베 사람들을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요나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습니다.
즉 표징 요구를 거부하지 않으시는 것은
사람들이 당신의 사흘 간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것을
악하다고 표현하십니다.
더 잘 믿기 위해서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 근거를 얻기 위해서
표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곱지 않아서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그 요구에 답을 하십니다.
요나는
자신이 회개를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느님을 피해 달아납니다.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곱지 않은 마음을 보시고도
기꺼이 당신이 표징이 되어주십니다.
아니 오히려 그 곱지 않은 마음이
변화되기를 기대하시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기대가 있고
하느님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것에서 돌아서고
멸망에서 돌아서기를 원하시는
안타까움이고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스스로 표징이 되시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들일 차례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여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