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화
종신서원하기전 유기서원소에 있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묵상한 것과 마음으로 다가왔던 가슴 벅찼던 많은
좋은 감정과 느낌들,, 이러한것들을 토대로 해서 내 나름대로 노래를 하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난 음악적 감
각이 거의 무디고, 느리고, 심지어 악보를 보고 읽는 것도 잘 모른다. 하지만 입회하기 전부터 대중음악들을 듣는것은 늘 좋
아하였었지만 음악적 감각이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고 나하고 같이 살아본 형제들도 아마도 더 잘알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어떤하나의 좋은것이 있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있다면 문학적공부나 감각이 없는 사람
도 저절로 시인이 되기도 하고 또한 작곡가도 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고, 또한 사람의 마음이고 정신인것 같다.
나는 악보를 그릴줄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 흥얼 그리는 것을 당시 같이 사는 형제에게 부탁해서 악보를 하나 만들어 달라
고 부탁을 했고 가사는 내가 쓰고 제목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라고 이름지었었다. 어느날 성북동에서 어떤 형제님의 축일
이 되었고, 기회가 생기게 되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불렀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행사가 끝나고 초대 받았던 손님
중 자매님 한분이 가시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 수사님, 노래 잘 들었습니다. 듣는동안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
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내가 작사작곡했다고 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라고 하는 그 노
래는 내가 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비록 내가 내 생각으로 떠올려서 곡조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내가 노래를 부른것
은 맞지만 그래도 그것은 내가 쓴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일부러 겸손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나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남에게 그렇게 감동을 줄 만한
노래를 쓸만큼의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그것을 굳이 내가 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인간적 능력을
대신하여 곡을 쓴것이 아니었던가?처음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떠올리게 되어 하게 되었던 묵상과 기도 작은 깨달
음등등..이 모든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다. 내가 묵상했다고 해서 내것이다. 내가했다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노래를 지은것도 역시 내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고, 이것 또한 내것이라고
말 할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나무가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고 믿고 그렇게 보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다. 나무는 그냥 나무로만
있을 뿐이다.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 말이다.
우리는 모두 나무들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존재하고 그 모든 인간적인 능
력과 재능을 가지고서 여러사회에서 살아가고 일을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을 한다. 내가 살아가고, 내
능력으로 살아가고, 내 재능으로 살아가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눈에 보이지 않으시
는 분과 그분의 손길이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것을 이끌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성경 곳곳
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신이고 영성이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도 삶의 생애와 글에서도 이러한 정신과 영성은 곳곳에서 나
타나고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나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부른'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라는 곡은 그때 이후로 한번도 불러 본적
이 없다. 허접한? 그 악보는 지금 벽장속 구석에있을 뿐이다. 어쩌다 한번씩 필요없는것 버린다고 다 끄집어 낼 때면 그때나
한번씩 보고, 내 마음속에 추억속에서만 간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