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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Ja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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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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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0일 수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마르 1,30)

죄의 악취에서 참회의 항기로
예수님께서 그대 침상 머리맡에 서 계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계속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와 계신데도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분이 어디 계시냐고 그대는 물을 것입 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 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마르 1,15 참조). 믿음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뵙게 합니다. 그분의 손을 만질 수 없다면 그분 발 앞에 엎드립시다. 그분 머리에 다다를 수 없다면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어 드립시다(루카 7,38 참조) 우리의 참회는 구원자께 향기가 됩니다. 구원자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십시오. 우리 죄에서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죄가 썩는 냄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눈물로 참회하면 주님께서는 죄의 악취를 향기로 바꾸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복음사가는 “곧 열이 가셨다”(마르 1,31)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손을 잡아주시자 열이 달아난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1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창조의 말과 일과 새로운 피조물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첫 번째 긴장은 안과 밖의 긴장이다. 참된 말은 밖으로 나가되 안에 머무른다.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출구는 그분께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 안과 밖의 긴장 내지 변증법이야말로 하느님의 일하는 방식, 인간이 영적으로 일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엑카르트는 하느님이 일하는 방식, 인간이 영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안과 밖의 긴장으로 보고 있다. 엑카르트는 참된 삶과 참된 창조의 근본적인 동력은 위아래가 아니라 안팎이라고 생각한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자신이 수도원을 나설 때마다 인간보다 열등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이와 달리 엑카르트는 지성을 부여받은 만물이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만큼 스스로에게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안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맞서지 않는다. 안과 밖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하느님의 메아리인 만물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함은 물론이고 되돌아 들어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만물은 자신들이 흘러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엑카르트는 창조계가 근원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조물의 전 생애는 자신이 흘러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소리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98)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1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1.2.3요한 / 요한 1-4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2절: 그레고리오 개혁과 성직 서임권 논쟁
교회의 자유:
그레고리오 개혁은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과는 교회정책적인 방향 정향(定向)에서 구별된다. 둘 다 교회의 자유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클뤼니는 이 자유를 우선 자기의 내적 생활에 대한 제후와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압박과 침해로부터의 자유라고 간주하였을 때, 그 개념은 확장되어 적극적인 내용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유”는 중세적 • 게르만적 개념에서는 각자가 적극적으로 하거나 마음대로 하게 하는 총체를 뜻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유”에 대하여, 각자가 법질서 또는 특권에 의거하여 자기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의 전체라고 말하였고, 이 자유가 누군가에 의하여 손상될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그레고리오 개혁의 목표가 된 “교회의 자유”는, 마찬가지로 우선은 교회를 세속 권세가들의 간섭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레고리오로부터 그 이름과 특징을 얻은 이 운동은 교구와 수도원들이 왕과 제후와 귀족들에 의해 수여되고(속인에 의한 서임), 또한 자주 철면피한 방법에서 금전적으로 충분히 이용되었다(성직 매매)고 공격하였다. 또 그 운동은 종교적 • 교회적인 사명 영역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교회의 자유로운 선거권 회복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자명한 일이지만 방해받지 않고 집행될 수 있도록 교회의 고유한 적극적인 권리들을 인정해 줄 것도 아울러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아직 보편타당한 법적 규범이 없었으므로, 그 윤곽을 잡고 관철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이 운동의 과제였다.
그래서 정치권력과의 투쟁이 일어나게 되었다.(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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