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합니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고
무시당하게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면 언젠가는 높아질 것이기에
그것을 보면서 자신을 낮추는 것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언젠가 높아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언젠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높아지고 싶다면
자신을 낮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낮추고자 하는 마음도
높아지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일까요?
높아지는 것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낮추었을 때에도
언젠가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즉 높아지지 않아도
내가 겸손을 선택하는 것이 보상받지 않아도
괜찮은 경우에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즉 보상은
나중에 높아지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옵니다.
사람이 높아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조건이 붙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낮은 자리에 있어도
항상 행복할 수 있다면
자리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낮은 자리에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인간적인 편안함,
다른 사람들이 좋게 보아주는 것들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드러나지 않아도
나는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면
굳이 나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결국 더 사랑받기 위해서
나를 드러내려 애쓰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도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에서
사랑을 느낀다고 할 때
높은 자리라는 조건을 달수록
있는 그대로라는 것과 상충되어서
사랑을 더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나를 낮춘다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편안함,
그 자유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