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얘기이고,
독서는 어제에 이어 바오로 사도와 신자들 관계 얘기로
오늘 나눔은 독서와 복음을 연결하여 묵상한 것을 나누겠습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였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충실한 종은 일차적으로 주인 곁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재산과 식솔들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인을 떠나지 않고 주인 곁에 충실히 머물며 지키는 것이 인격적인 충실함이라면
주인의 재산과 식솔들을 잘 관리하는 것은 사명적인 충실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격적인 충실성은 주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는 것이고
오늘 복음의 말씀대로 주인에게 늘 깨어있는 것이며,
달리 말하면 늘 기도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깨어 기도하며 언제나 기도하는 것은,
제 생각에 성사적인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사적인 기도란 무엇을 하든 그 일 가운데서도 주님께 깨어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차를 마시더라도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음악을 듣거나 하느님을 묵상하면서 마시면 차 한 잔의 성사가 되지요.
저의 경우 옛날에 담배 필 때 한동안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흡연을 성사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담배 필 때마다 십자성호를 긋고 담배 피기 시작했고,
흡연이 니코틴 중독이 아니라 주님께 올리는 분향 예절이 되게 했지요.
다음으로 사명적인 충실성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열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웃이란 내게는 이웃이지만 주 하느님께는 자녀이고 식솔이며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종인 나에게 돌보라고 맡긴 존재들이지요.
이는 마치 자식이 내게는 자식이지만
실은 하느님께서 돌보라고 내게 맡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내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자녀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라도록 영적으로 세심하게 돌볼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답게 자라도록
영적으로 어떻게 세심하게 돌봤는지 얘기하는데
먼저 신자들을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믿음이 확고함을 칭찬하면서도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자기가 채워줘야 한다고,
그러니까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고 기도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신자들의 사랑을 자라게 하는 역할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또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이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충만하면 이제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사실 악마를 믿는다면 모를까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내게 믿음은 있지만 사랑을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쯤은 머리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알지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주님 말씀하셨고,
프란치스코는 여기에 더해 애를 다하고, 감각까지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는 거지요.
아무튼 하느님 믿음은 있지만 이웃 사랑이 없는 나는 아닌지,
사랑을 한다지만 머리 사랑으로 그치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