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씀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넓은 성구갑, 긴 옷자락 술이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떠올릴 때
'그 있잖아, 성구갑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 길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를 대변하는 것은
'나'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나의 겉모습입니다.
여기에 '나'는 없습니다.
겉모습에 신경 쓰기 시작하는 순간
좀더 화려하고
좀더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안타까움은
그러면서 점점 '나'라는 사람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점점 알지 못합니다.
화려함이 '나'인 것 같고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이 '나'인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나를 떠받들어주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내 모습 그대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스승이나 아버지,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단지 역할을 표현하는 표시일 뿐이지
그런 소리에 우쭐해지거나
어깨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나를 잃어가면서 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래의 나와
내가 그려놓은, 혹은 사람들이 그려놓은 내 모습이
다르면 다를수록 힘들어집니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로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제로 받아주시면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